아주 옛날, 먹고사는 일이 쉽지 않았던 시절의 얘기이다. 어느 날 한 선비 집에 죽마고우(竹馬故友)가 찾아 왔는데 끼니때가 되어도 가지 않고 주인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주인의 부인은 남편의 식사를 올려야 할 판이지만 손님까지 대접할 양식은 없는지라 사랑에 들러 남편에게 넌지시 “인양지사(人良之事, 식사를 올릴까요)하오리까?”라고 물었다. 남편이 부인의 말을 금새 알아듣고 답하기를 “월월산산(月月山山, 朋出, 즉 친구가 떠나거든)”이라고 했다. 이를 듣고있던 선비의 친구가 인정이 메마른 부부의 소행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훌쩍 일어서며 하는 말이 “정구죽천(丁口竹天, 可笑, 즉 가소롭구나)이로구나” 라고 했다.

아무리 어렵기로서니 때가 되어 밥 한끼 나누지 못하는 죽마고우의 인색함은 물론이고, 친구를 멀쩡히 두고 부부의 주고받는 얘기가 친구를 무시하는 듯한 소행이라 불쾌하고 가소롭기 짝이 없다는 대구(對句)를 한 것이다.옛 선인들의 해학에서 오늘날의 잘못됨을 찾을 수 있을 때가 많은데, 비록 만들어진 이야기일 터이지만 이 얘기가 떠올려지는 것은 요즘 세상 돌아가는 판세가 꼭 이와 같아서이다.

대통령 측근에 대한 특검 정국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야당이 거세게 반발하고, 급기야 야당 총재가 단식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제는 야당 총재의 단식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듯한 대통령의 언행이다.

국회 재적 3분의 2를 넘은 표수로 가결된 특검안을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명분으로 용기 있게 거부한 대통령의 강심장도 문제지만, 이에 대한 항의로 단식에 들어간 제일 야당 대표에 대하여 생각 없이 내뱉는 대통령의 말은 국민들로 하여금 점점 정나미가 떨어지게 하는 것들이다. 아무리 정치적 적대관계에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보다 고령의 제일야당 대표가 단식을 하는데 이를 개와 고양이의 싸움에 빗대기도 했다.

그것을 다수당이 벌이는 불법파업이라고도 하는 것은 아무리 경험이 없는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한 나라의 대통령의 자리에서는 삼가야 할 말인 것이다. 그래서 군대말로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생각난다.

지금 적지 않은 수의 국민들은 야당 대표의 단식이 가져다 줄 상징적 파장에 대하여 상당한 의미를 주고 있음에도 여당이나 대통령은 이를 가볍게 보고 있는 듯 하다. 단식을 개인의 자유로 치부하고 그 의미를 전혀 도외시하는 이 같은 대통령의 언행에서 앞으로 남은 4년의 그의 정치 행적을 그려볼 수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 지금 적지 않은 국민들이 깊은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 보선에서 초선으로 당선된,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는 한 젊은 의원은 야당 대표의 단식을 두고 “야당 대표의 식사 문제에는 관심이 없으며, 그가 쌀뜨물을 먹든 말든 상관이 없다”고 했다.

“단식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자유이고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야당대표의 출신 학과까지 들먹이며 학과 교육문제까지 거론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 이 나라는 막가는 세상으로 가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 초선 의원은 “단식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 농민단체에서 쌀값 떨어진다며 단식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내도록 하자”고도 했다는데,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의 발상에 정말 세상이 정구죽천(可笑)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칙과 신뢰라는 글자를 새겨 5000개를 배포했다는 대통령 시계 사진을 보면서, 그 반대로 원칙도 없고 신뢰가 쌓이지 않아 국민들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는 듯 보이는 대통령이 매우 안타깝기만 하다.

민생국회를 팽개치고 단식에 돌입한 야당대표도 책임을 면할 수 없지만, 교언(巧言)으로 여론을 핑계로 측근비리에 대한 의원 3분의 2 이상의 특검 요구 의견을 무시하는 대통령의 발상과 그 다음 행적을 더 걱정하게 되는 것은, 앞서 얘기한 선비 부부의 속 들여다보이는 말에서 그 친구가 느꼈던 배신감과 괘씸함이 어우러져 더욱 그렇다.

참으로 요즘 세상이 정구죽천이다.
                                                                                                                                박규홍 서원대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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