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즐겨야 하고 고마움을 고마움으로 느껴야한다. 고달픔을 힘겨워 생각을 하면 아픔이 되고 시련을 힘겨워 생각을 하면 고통이 될 것이니 다만 하루를 감사하고 즐길 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좋은 것은 좋으니까 그냥 즐겁고 나쁜 것들은 좋아 질 터이니까 그냥 즐겁다. 새 울음소리는 듣기가 좋아서 좋고 물 흐르는 소리는 느낌이 좋으니 좋고 산천(山川)의 푸르름은 보기가 좋으니 좋다. 그리고 이 골목에서 무엇인가를 꼭 얻어야겠다는 생각보다도 그냥 그렇게 머물러 있다.

아무런 생각도 없고 아무런 욕심도 없이 발길이 닿는 데로 발길을 따라서 정처 없이 그렇게 걷는 것이다. 그러다가 쉴 만한 곳을 만나면 쉬었다가 가고 가다가 비를 만나면 피하였다가 가고 가다가 밤이 찾아오면 그렇게 쉬었다가 갈 뿐이다.

그래서 서둘러서 급히 갈 일도 없고 바쁘다고 달려서 갈 것도 없다. 더러는 외로움도 찾아오겠지만 외롭다고 친구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고 더러는 시련이 찾아오겠지만 현실이 어렵다고 사람을 찾아나 설 것도 없으리다.

또 내가 외로울 때에는 그 사람도 외로울 것이고 내가 고독할 때에는 그 사람도 고독할 것이니 나도 즐기고 그 사람도 즐기다가 우연히 만나면 그곳에서 손을 잡고 서로가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즐기는 곳이야 어디인들 어떠하리까.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즐기는 놀이야 무엇인들 어떠하리.

자신의 영혼에서 슬픔을 보지 않으면 그 뿐이 아니겠는가? 또한 오고 갈 곳이 없다 라고 한탄 할 필요도 없고 태어나기를 어둡게 태어났다고 한탄 할 일도 아니다. 이토록 정처 없는 나그네의 길에서 우연히 숲길을 거닐다가 바람을 만나면 바람과 함께 노닐고, 구름을 만나면 구름위에서 하염없이 즐기는 것이 아니던가? 그 옛날에 몇 푼을 만지려고 그토록 가슴 조이던 때를 기억한다면 지금의 발걸음이야! 이곳 세상이 무릉의 세상이 아닐까 한다.

젊은 날에 친구들과 함께 무릉도원(武陵桃源)찾아 길 떠났을 때에는 그렇게도 찾기가 힘이 들더니 마음자락 하나를 바꾸고 보니 이곳의 세상이 신선(神仙)들의 세상이요, 내가 이곳에서 노니는 나무꾼이 아니더냐!

그리고 오래간만에 산에서 내려온 곰 같은 친구와 마주 앉아서 천년(千年)의 시간을 담소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네. 꿈결인가? 싶어서 바라다보니 친구는 가고 없는데 왠 초동의 아이들만이 초립(草笠)을 쓰고 술래잡기 놀이에 빠져있도다. 마음에다가 바람을 담으면 마음은 바람이 되고 마음에다가 허공을 담으면 마음은 허공이 될까? 그리고 허공에다가 마음을 줄 때에 마음은 허공에 있고 바람에다가 마음을 줄 때에 마음은 바람으로 머물고 있을까?

마음은 허공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건만 어떻게 텅빈 하늘이 가슴에서 머물고 그렇게 쓸쓸한 바람이 가슴에서 소리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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