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이 가는 곳에 아리랑 변종이 생긴다. 노래 항목에서 단일 유형으로 가장 많은 편수를 자랑한다. 아리랑은 민족예술미학이 담긴 무형문화재 유산이다. 고향성(故鄕性)을 떠올리는 아리랑, 그 아리랑의 길에는 우리 민족의 공동체 삶과 문화가 살아 있다. 충청도아리랑, 충북아리랑, 청주아리랑 ….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아리랑마다 사연이 있다. 중국 속의 충북 조선족 마을, 정암촌에는 청주아리랑이 질기게 살아 있다.

1930년대 중반, 조밥이라도 배불리 먹기 위해 떠난 보은, 옥천, 청주 사람들 80여 세대가 두만강 양수진 정암촌에 정착하였다. 리혜선의 ‘두만강의 충청도아리랑(2001)’에는 정암촌 사람들의 이러한 역정이 잘 나타나 있다. 청주아리랑 세미나를 통해 보존과 활용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망국의 설움을 씹으며 살아온 충북 사람들, 그들 일부가 낯선 땅에서 고향아리랑을 부르며 살고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산 설고 물 설은 이국만리에 와서 손발이 부르트도록 황무지를 일구며 살았다고 했다. 그 고난의 역사에 청주아리랑의 끈이 있다. 핏줄의 복원과도 같은 청주아리랑이 청주에서 다시 불러지는 감동, 어찌 말로 다 표현하랴. “아리랑타령이 얼마나 좋은지 밥 푸다 말구서 엉덩춤 춘다”, 이어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로 받는다. 온갖 사연을 찍어다 붙이면서 마음 속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8분의 6박자로 세마치 장단으로 엇박자의 정선아라리 투가 있다. 고난 속에 이보다 더 위로의 명약이 어디 있었을까. 낯설고 척박한 이국땅에 뿌리내리면서 사는 몸부림, 아리랑만큼 숙명의 드라마다. 청주아리랑의 재현은 놀랍도록 생생하다. 정암마을의 민속을 통해 충북의 문화적 정체성을 또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한민족의 이주사를 말할 때 아리랑과 같은 민속이야말로 동질성을 파악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역사의 질곡 속에서 민속을 통해 당당하게 살아보려는 인성과 내력을 읽는다.

청주아리랑의 이주와 귀향은 단순히 회고적 이야깃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충북문화의 미래와 관련된 것이다. 충북 지역문화의 미학적 자산이다. 소리문화에서 고유인자와 문화적 공질성(共質性)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아리랑은 민족의 저변에 흐르는 문화적 감성대다. 아리랑은 세계문화유산의 대표성을 띠기에 판소리와 함께 한민족의 대표적 구술문화유산이다.

아리랑의 정체성은 한의 정서만 내재된 것이 아니라 신명의 정서도 담지하고 있다. 아리랑의 고향성을 청주아리랑의 귀향과 복원 과정에서 보여주듯이 잊혀진 향수의 진원지면서 민족 정체성의 젖줄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정암회와 같은 작은 모임에서 시작된 청주아리랑의 관심과 홍보는 직지와 같은 기록문화유산과는 또다른 뜻이 있다.

청주아리랑을 통해 누구나 어울릴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 해외동포의 문화, 북한동포의 문화, 세계문화유산의 무형문화재 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던져준다. 말로만 한민족의 정체성 확보와 세계화를 외칠 것이 아니라 청주아리랑과 같은 관심과 실천만이 우리의 위대한 유산을 지킬 수 있다. 정암회 회원들처럼 이러한 애정과 노력만이 고유문화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청주아리랑은 조선족 충북마을 소리유산인데 청주농악보존회 등에서 원형을 계승하고 청주아리랑, 이 기막힌 사연을 아리랑 오페라를 만들고 각종 콘텐츠로 개발하여 청주, 충북의 문화자원으로 만들어야 한다. CD와 동영상물로 만들어 보급하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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