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빠지기 쉬운 일본 및 일본인에 대한 인식오류가 있다. 국민들은 착하고 예의바르나, 일본정부는 나쁘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일본정부에 대하여 ‘우리가 변하면 일본정부도 변할 것이다’라는 ‘연목구어’ 식의 희망을 가진 우리 정치인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현 일본의 정치사상은 전쟁전과 흡사하며 우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를 이끌고 있는 정치가는 코이즈미, 하시모토 전 수상, 모리 전 수상, 망언 전문가인 아소 타로-와 같은 자민당 의원 및 이시하라 토-쿄-도지사 등 전형적인 우익 정치가 및 지자체의 행정수반들이다.

이를 ‘전몰유족협회’라는 300만 일본 국민이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실로 일본 전체국민 수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이는 인간이면서도 신으로 떠받들어지는 천황제 및 신도 정신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정치에서는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 소수의 집권자가 무슨 사상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어차피 다수의 일본국민은 순종적이며 아무리 잘못된 정부 정책일지라도 이에 반대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점을 분명히 명심해야한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평소로부터의 보이지 않는 억압 때문에 가끔 엽기적 사건이라든가 일탈 행위가 일어나는 것이다. 견디기 힘든 폭력과 압력이 한 개인에 가해지는 이지메, 마을에서 한 집안을 따돌림 하는 무라하찌부(村八分), 이민족이나 자국민 중 힘 없는 하층민에 대한 차별이 폭력과 함께 나타난다.

일본인들이 2차 대전 시 감행한 카미카제도 자발적 국가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집단에 따르지 않으면 대우도 못 받고 죽는다는 강요된 충성이다. 일본 국민성은 타인 지향적이고 압도적인 힘에 좌우되고 스테레오 타입의 사고로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고 약자를 증오하는 심리를 갖고 개인의 원자화로 개인적인 판단에 의한 행동이 상당히 미약하기 때문이다.

엘리트층은 모두 등급화되어 획일적이고 이들에 의한 공포와 폭력에 의한 정치가 제국주의주의 시대에 이루어짐으로서 승산이 없는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카미카제식 공격이나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질서를 잘 지키고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매우 예의바르고 착하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 국민들을 보고 일본 정치를 판단함은, 엄청나게 위험한 발상이다 못해 나이브한 몽상이다. 일본인과 일본정치는 극과 극이다. 이를 구분 못하면 엄청난 대일 외교의 실패를 볼 것이다.

우리나라 위정자들의 일본 정치가에 대한 환상과 ‘우리가 먼저 변하면 그들도 변할 것이다’라는 환상은 금물이며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현 정부의 주요 위정자란 분(실세 국회의원)조차 ‘일본의 유사법제’를 우리가 비판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는 얼간이도 있을 정도이다. 이 정도 대일 인식을 가지고 있으니 어찌 대일 외교에 성과가 있으랴.

오로지 비난만이 있음은 당연하다. 우리가 일본의 유사법제를 비판 할 수 있음은 그 법이 결국은 비수가 되어 한반도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26년 전에 발의된 법제이다. 1873년 나쁜 이웃 한국을 쳐야한다는 ‘정한론’이 일고 난 후 37년 후 한일합방을 당했고 결국 35년간 지배를 받았다. 일본은 대한반도 정책에 대하여 이렇게 집요하고 끈질기다. 우리가 일본을 볼 때는 이중자대로 철저히 구분해서 봐야한다.

즉, 일제시의 한줌의 일제와 현 우익 정치집단을 일본 국민과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점이다. 대일 외교에서는 이점을 유념해야한다. (JANG83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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