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에서 고추의 쓰임새는 꽤나 다양하다. 원산지가 남아메리카의 아마존강 유역으로 알려진 고추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무기의 일종인 화생방을 위해 처음 전래됐다는 설이 있으나 문헌상 고추도입시기는 임진왜란 중으로 기록돼 있다.

일본의 병법에 매운 개자초(芥子草)를 태운 연기로 적진을 혼란시킨 다음 기습한다는 ‘화연공법’이 있는데 이 당시 개자 대신 고추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선조 때 학자인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도입 초기의 고추는 주막집 텃밭이나 마당에서 조금씩 가꾸어 그것을 소주에 타 고추 술을 만들어 파는데 쓰였다고 전하고 있다.

지금도 감기를 앓으면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 먹는 민간요법(俗方)은 이 고추 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우리조상들은 지혜롭게 고추를 음식조리에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처럼 약으로도 쓴 것이다.

한 겨울에 먼길을 떠나는 사람은 복띠(腹帶)에 고추를 넣어 두르고 겹버선 사이에 고추를 넣어 신고 떠나면 그 자극으로 혈행이 좋아져 추위를 물리치고 동상도 걸리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추가 방한제로도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70·80년대 만하더라도 시골집에서는 아들을 낳을 경우 부정탄다하여 새끼줄에 고추를 달아 대문에 내거는 샤머니즘이 있었다. 또 병귀나 액귀가 마마가 나돌면 집 앞에서 고추를 태우는 것이며, 시집가는 신부의 가마 멜빵에 고추를 넣는 풍속은 옛날 이야기가 됐다.

고추씨도 쓸모가 있었다. 친정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속치마 끈에 고추씨를 가득 담은 눈물주머니를 남몰래 달아주는 풍속이 있었는데 새댁이 시집의 초상 마당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흉이 되고 소박맞을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새색시는 곡(哭)할 차례가 되면 뒷마당에서 눈물주머니의 고추씨를 꺼내 가루를 내어 손등에 바르고 빈소에 엎드린다. 그리고 입으로 곡만 요란스럽게 하고 손등을 눈에 갖다대면 눈물이 저절로 쏟아져 내리는 최루제(催淚劑)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추 잘 먹기로 유명하다. 지금도 한사람이 닷 근씩을 먹는다는데 일제 때는 열두 근이나 됐다고 했다. 부대수요까지 감안하면 고추 없이는 못 사는 나라인 것이다.

벌써부터 고추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데 여름에 비가 잦으면 그 만큼 고추는 흉작이다. 장마가 길면 고추가 금(金)추가 된다. 한국인들은 고추가 안 들어가는 음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데다 김치 등 온갖 양념은 고추 없이는 아침 한끼를 먹기조차 버거운 것이 우리들의 먹거리 인 것이다.

사스의 여파로 김치가 이제 세계적인 식품으로 부각됐지만, 세상에 아무데서 나는 배추와 고추로 김치를 담갔다고 하자, 과연 국내에서 생산된 토종배추와 고추로 담근 김치와 비교조차 되지 않을 뿐더러 우리정서에 맞겠는가.

중국산 배추로 담은 김치는 흐물흐물 물러터지는 반면 신토불이 배추의 아삭아삭한 맛과는 비교조차 될 수 없는데 이 역시 고춧가루가 없다면 제 맛을 내기가 어렵다.

고추 값이 지난해보다 배 이상을 올랐다 한다.

넉넉해야할 수확기를 앞두고 농민들의 인심은 흉년만큼이나 흉흉해지고, 가뜩이 어려운 경제에다 고추 값 인상만큼 고스란히 가계부담으로 전가되니 세상인심은 더욱 각박하게 만들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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