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의 아소 타로오(麻生 太郞)정조회장은 지난 5월31일, 토쿄 대학 강연에서 한일합방 당시의 ‘창씨개명’에 대해 ‘당시 조선사람들이 패스포트를 받기 위해 이름에 김(金)이라 쓰여져 있었는데, 그것을 본 만주인들이 “조선인이다”라 말해 일하기가 힘들었다. (때문에) “조선인들이 성씨를 만들어 달라”했던 것이 원래의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창씨개명에 관해서는 96년, 자민당의 하시모토 류타로 전 수상도 한·일 수뇌회담에서 ‘창씨개명 등으로 얼마나 많은 한국 분들의 마음을 손상시켰는가는 상상하고도 남는다’라고 사죄했었다. 금번 아소 타로오씨의 발언은 이를 정면으로 뒤엎는 망언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창씨개명은 조선인의 황민화 정책의 일환으로서 실시됐으며 1940년 2월11일부터 1940년 8월10일까지 8개월간 실시됐다. 당시 전 조선인의 78%가 왜식(倭式)으로 이름을 갈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품격 높은 저항을 했으니, 바로 다음과 같은 이름들이다.

△미나미 타로오(南 太郞)- 당시 조선 총독이 미나미 지로오(南次郞)이니 지로오는 둘째 아들이라는 뜻이고 타로오는 큰 아들이라는 뜻이니 왜놈 총독의 형님이란 뜻이다. △쿠로다 규이찌(玄田 牛一)- 이는 한자의 파자(破字)이니 이를 조합하면 축생(畜生)이 되는바, 일본어로는 ‘치쿠쇼오’라하며, 억울하고 화났을 때 독백처럼 내뱉는 말이다. △이누쿠소 쿠라에(犬糞 食衛)- 앞 두 글자의 성씨는 말 그대로 ‘개똥’이란 뜻이며 이름 두 자를 일본어로 부르면 ‘쳐 먹어라’ 라는 뜻이니 ‘개똥이나 쳐 먹어라’라는 뜻이다. 이 아니 기가 막힌 문학적 저항이었던가.
△텐노 헤이카(天野 炳夏)- 발음대로라면 ‘천황은 병하이다’라는 뜻이니 일본인들이 볼 때는 불경죄에 해당 됐을 것이다.
이러한 저항을 보더라도 창씨개명이 스스로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강제로 행해졌음을 의미하며 많은 조선인들이 반항하거나 슬기로운 대처로 일본인들을 분노케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본정부의 이민족에 대한 창씨개명의 강요는 실제로 17세기 초반부터 시작된 것이다.

특히 1871년 실시된 ‘아이누 습속금지령’과 일본식 호적에 편입키 위해 ‘창씨개명’을 실시했던 전력은 조선에서도 창씨개명을 강제로 실시했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결국 창씨개명은 일본식 이름으로 조선인들을 개명시켜 이질감에서 오는 일본인들의 두려움을 해소하고 동질감을 느끼기 위해 강제로 실시하게 된 면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핵 문제 등으로 그렇지 않아도 힘든 한·일 양국의 현 상황에서 현명해야할 국정의 중요 책임자가 뻔한 거짓말로 두 나라간의 교류를 어렵게 만드는가. 노 대통령의 방일 전에 이런 망언을 했음은 한국 정부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잔꾀일 수 도 있다. 일본인들이 자주 즐기는 ‘치고 빠지기 식’이다. 아소가 6월2일날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며 사과한 것만 보아도 석연치 않다. 그러면서 며칠 후엔 또 다시 일본인들에게 자신의 말은 진심이었다고 말함으로서 망언철회는 거짓으로 드러났다. 일본은 바야흐로 ‘우향우’로 진로를 정하고 일사천리로 달려가고 있다. 이래저래 한국 외교는 외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시기를 건너고 있다 하겠다. 상대국을 정확히 알아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현명한 외교를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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