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국립청주박물관을 찾았다. 늘 갈 때마다의 느낌은 청주에 이런 공간이 만들어져 다행이고 행복하다는 점이다. 이번 박물관 방문에서는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따뜻해지고 흐믓해졌다.
첫 번째의 사람은 하나라도 더 얻고 가지려는 물욕이 판을 치는 세태 속에서 소중히 모아온 628점의 문화재를 여러 차례 국립청주박물관에 기증한 김연호 선생이다.
52년 경남 하동 진교에서 태어나 제천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란다. 직업이 수의사인 관계로 지역 곳곳을 왕진다니는 과정에서 인근에 산재한 문화재들을 접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충북지역의 문화재들이 타지로 흩어지는 것을 보고 사재를 털어 문화재를 수집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재를 털어 모은 문화재를 선뜻 사회에 기증한 점은 요즘의 우리 세태와 비교해보면 실로 놀라운 일이다.
‘가진 것은 없어지고, 주는 것은 남는다’라는 신념을 몸소 실천한 선생은 우리 모두에게 찡한 감동을 준다. 또한 선생이 기증 의사를 부인에게 말하자 부인도 선뜻 동의했다하니 평소 이들 부부의 마음이 어떠한지 짐작이 간다.
선생의 기증품은 ‘백자청화진사송학문항아리’를 비롯한 도자기, ‘옹기굴뚝’을 비롯한 옹기, ‘청동항로’를 비롯한 금속공예, ‘등잔걸이’를 비롯한 민속품 외 회화, 서지, 석기·토기 등 선사시대의 토기로부터 고려·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김연호 선생으로부터 기증받은 국립청주박물관이 선생의 뜻을 널리 알리고 많은 사람들이 감상토록 문화재 기증 전시회를 개최하고 이들 기증문화재들을 연구 분석한 논문과 기증품들의 사진을 곁들이고 설명한 전시 ‘도록’을 제작해 선생의 문화재 사랑의 향기를 기록으로 남긴 노력 또한 아름답다.
전시 관람 후 잠시 휴식을 위해 박물관의 휴식공간에서 차를 마시는데 주위공간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분재가 눈에 띄었다.
분재엔 문외한 임에도 밖의 조경과 실내 공간을 절묘하게 나누면서 하나된 자리에 위치한 분재의 고고한 자태에는 실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런 모습을 보던 후배의 한 마디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박물관장의 박물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후배의 말인즉 어느 날 식사후 한 분재집을 지나다가 박물관장이 그 분재를 샀는데 박물관장실에 놓지 않고 휴게실에 놓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다.
우암산에 자리잡은 국립청주박물관은 청주의 대표적 문화공간이다.
고 곽응종 선생이 부지를 기증하고 지금은 타계하신 우리나라의 대표적 건축가 김수근 선생의 역작 중 하나인 국립청주박물관은 옛 문화유물만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지역 젊은 작가들의 현대적인 작품 전시도 포용하는 열린 공간이다.
박물관에 올라 내려다 보는 녹색의 향연은 이곳이 얼마나 지리적 위치가 빼어나고 아름다운지 금새 알게 된다. 이곳에 오르면 저절로 문화사랑의 향기가 배어 각박한 삶에서 선조들의 여유와 지혜를 느끼고 가슴에 담아갈 수 있는 곳이다.
국립청주박물관이 김연호 선생처럼 사회를 위해 기증하는 고귀한 마음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도록’을 제작함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어찌 물질적인 가치로만 따질 수 있으랴. 기증하는 사람의 뜻을 존중하고 그 가치를 소중히 하는 국립청주박물관의 노력이 제2, 제3의 기증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가 되길 바란다.
세상살기가 점점 힘겹다고들 한다. 하루하루 살기에 바쁘다 보니 내 한 몸, 내 가족 돌보기에 급급한 세태다. 경제 우위의 사회풍조 속에 사색과 여유는 사라지고, 문화예술을 접하며 마음의 양식을 살찌우는 삶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경우가 허다한 요즘이다.
그런 각박하고 암울한 세태를 벗겨내고 아름답고 정겨운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사회는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 스스로의 노력에 달렸다. ‘준 것은 남고 가진 것은 없어진다’는 김연호 선생의 글이 눈길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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