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1일 실시된 제2차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에 전국에서 14만7천215명(충북 3천283명)이 응시했다. 단일 자격시험 중 응시생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린 것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IMF 외환이후 국내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너도나도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에 응시하고 있는 것은 지금의 경제사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노후대책이 비교적 잘돼 있는 공직자 등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만한 노후대책이 서있지 않는 현대사회의 직업구조에도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에 응시하는 사람들이 폭주하고 있는 하나의 원인으로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이면에는 한민족의 끈질기고 집요한 중개문화(仲介文化)와 중개의식(仲介意識)이 녹아 들어있다는 점이 대단히 흥미롭다.

‘황야의 무법자’‘7인의 총잡이’등 서부영화에서 보듯이 서양사람들은 싸움을 하겠다는 생각과 싸움을 시작할 때까지는 그 시간이 짧고 전광석화처럼 순식간에 이뤄져 승패가 나고 만다.

반면 한국인은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구경꾼이 싸움판 주변에 빙 둘러서게 마련이다. 먼저 팔을 걷고 침을 손에 퉤퉤 뱉으면서 “너 오늘 죽었어”하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리지마”라고 말을 할 때만하더라도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는 듯하지만 오히려 달려들기는커녕 상대방에게 “때려 때려”하면서 볼을 내민다. 아마 이런 식의 싸움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싸움판의 진풍경이다.

이처럼 한국인들이 싸움판에서조차 중개문화를 엿볼 수 있는 것은 중개문화와 중개의식이 강하게 발달한 민족이기에 가능하다. 즉, 싸움판에서 말리지 말라는 것은 곧 싸움을 누군가가 나서서 말려달라는 뜻으로 중재의 의미가 강하게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사람을 만나 자신을 소개하는 직결문화가 발달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람을 사귀는데도 중개인이 들어서 중재를 해야 일이 직성이 풀리는 중개문화가 발달했다.

비단 결혼풍속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은 연예결혼이 많지만 과거에는 결혼 중매쟁이 없이는 시집·장가가기가 힘들었다. 젊은 남녀의 결혼을 알선하는 회사가 성장가도를 달리는 것도 중개문화와 전혀 무관치 않다는 점이다.

과거 쌀 한 말, 콩 한 되를 사고 파는데도 거간(居間)을 들이거나 객주(客主)가 상권을 좌지우지할 때도 있을 정도로 중개문화가 발달했으며 농산물의 유통마진이 원가보다 높아지는 이유도 바로 한국의 질기고 억센 중개문화의 잔재라 하겠다. 한국경제의 침체국면이 장기화되고 있다.

백화점과 할인점이 매출이 크게 떨어지고 재래시장도 장사가 안 된다고 난리다. 경기에 민감한 택시도 불황을 겪기는 마찬가지. 지갑이 얇아진 서민들이 택시를 타지 않아 운전사들이 사납금을 채우기가 급급하고 대학생들의 취업률은 사상 최악의 상황이다.

반면 ‘주식의 주’자만 꺼내도 혈압이 오를 정도로 주식을 했다가 낭패를 경험한 사람들은 시장경제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주식매매를 중개하는 주식시장이 (증권회사 직원들조차 주식장세 이해 못함) 연일 치솟고 있으니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을 것이다.

부디 바라건데 서민들의 생활이 고단해진 틈새에 입담꾼들이 들어서 우리민족 특유의 덕담을 이곳저곳에 중개해 메말라 가고 있는 세상의 인심을 불사르고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에도 불을 지필 수 있도록 단군이래 객주들까지 모두 동원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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