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 신문을 펼치거나 텔레비젼을 켜고 뉴스 보기가 두렵다. 최근 며칠동안 자살보도가 주를 이루더니 4일아침엔 남북한 경협을 주도하던 정몽헌 회장의 자살이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의 죽음을 두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산 사람들이 어찌 알겠는가? 그럼에도 정몽헌 회장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파악에 세인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카드 빚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어 안타까운데 놀랍게도 빚에 쪼들린 학생들이 윤락 가에 내몰리고 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극한까지 몰고 간 것일까.
길거리에서 아무에게나 카드를 발급해주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가 유일하지 않을까. 무책임한 카드의 남발이 향후 우리 사회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칠지 뻔한데도 나몰라라 방관한 점은 우리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밀어부치는 것은 돈 때문이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배금사상의 팽배는 점점 늘어만 가고, 뻔히 결과가 예측됨에도 애써 못본 체, 모른 척, 둔감한 척하는 요즘 세태가 두렵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낯뜨거운 장면이 여과없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IT강국 한국의 오늘 모습이다. 인터넷으로 유포되는 음란물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가장 민감한 때인 청소년들에게조차 무차별 음란물 공세가 펼쳐진다.

최소한 성인과 청소년이 구분되어 보호받아야 됨에도 돈벌이 앞엔 속수무책이고 법 집행은 뒷북치는 형국이다.

최근 카드 빚에 몰린 여성들에게 음란물을 찍도록 강요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면 우리나라의 미풍양속은 이제 밑바닥을 헤매는 수준이다.

최소한 선진국은 성인과 미성년의 구분이 엄격하고 확실하다. 사회 규범을 파괴하려는 범법자들에겐 단호한 법 집행으로 책임을 묻는다.

지금 우리나라의 문제들을 방관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욱 혼란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요즘 텔레비젼의 역사극 ‘장희빈’을 즐겨본다. 역사의 전환점마다 목숨 내걸고 임금께 충언을 고하는 신하들의 기개가 놀랍다. 선비정신의 기개가 선정의 기반이 되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처럼 집안에서의 어른 역할이, 사회에서의 어른의 역할이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른이라 칭하는 사람은 많아도 어른 역할을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참여정부 들어 세대간, 계층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사회가 분열되고 갈등이 심화될수록 이를 조정하고 화합을 이끄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고 지금 우리는 그런 어른다운 어른이 절실하다.

지난 일이지만 대북지원이 좀더 투명하게 추진되도록 사회지도층이 역할을 했더라면 고 정몽헌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고심하지 않았을지 모르며, 무분별한 카드의 남발을 사전에 막았다면 카드로 고통받는 젊은층과 서민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어렵고 힘든 시대일수록, 어른의 역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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