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어른들은 결혼을 앞둔 자녀를 불러놓고 부부간의 인생철학을 이렇게 가르쳤다.

결혼초기에는 멋모르고 살고, 20대는 아기자기해서 살고, 30대는 헤어질 수 없어 살고, 40대에는 ‘손맛깔’ 때문에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50대는 서로 불쌍해서 살고, 60, 70대는 서로의지 할 수 없어서 산다며 특유의 결혼관을 강조했다.

최근 탤런트 출신 재벌가 며느리로 고급외제 승용차의 도난사건 때문에 세간을 화제를 모았던 고현정씨도 성격 차로 이혼한 것을 두고 구구한 해석이 많지만, 현대사회에서 가장 큰 이혼사유는 성격 차가 가장 많다.

과거 같은 면 소박맞을 지언정 이혼이란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 젊은이들의 이혼세태에 대해 어른들은 자다가도 복창이 터질 일이 아닐 수 없을게다.

어른들의 결혼관 중 관심을 끄는 것은 부인의 손맛깔 때문에 살았다는 대목이다. 어쨌든 과거의 우리 부모들은 아내의 뛰어난 음식솜씨가 부부금슬을 돋우는 촉매제요, 부부관계를 결속시켜주는 매개체가 됐음을 알 수 있다.

음식도 같은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요리하는 사람에 따라 그 맛이 다르다. 그 비결은 음식을 만든 사람의 손가락 사이에서 배어 나오는 특유의 손가락 맛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즉 음식의 재료나 양념에서 나오는 맛이 아니라 손가락 맛을 ‘손맛깔’이라고 하는데 옛날 안방마님의 부도(婦道)의 조건 중의 하나였다.

각 가정마다 서로 다른 어머니의 손맛깔을 맛보고 자란 기성세대들이 아내가 아무리 손 맛깔을 낸다하더라도 어머니의 음식의 향수를 잊지 못한다.

하물며 그 어머니와 아내의 손맛깔로 결속된 미각 때문에 더욱 정이 들게 마련이고 그 존재가치가 돋보였다. 이 것이 향수의 씨앗이 되고 살맛을 새롭게 느끼곤 했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짠맛이나 단맛의 혈중염도(血中鹽度)와 혈중당도(血中糖度)를 좌우하는 생리적인 맛과 신맛이나 쓴맛처럼 정서를 좌우하는 정서적인 맛으로 구별되는데 어릴 때부터 체질화된 어머니의 손맛깔대로 먹어야 생리나 정서가 안정된다고 한다.

갓 시집온 새색시의 맛깔 손을 익히지 못하면 남편이나 시부모의 생리나 정서를 안정시키지 못해 불화를 일으키거나 소박맞을 조건이 됐다. 가문마다 간장과 고추장, 된장 등 장류(醬類)의 맛이 다르고 김치 맛과 술맛처럼 발효음식 맛이 서로 달라 오히려 그것을 가문의 큰 자랑으로 삼았던 것이다.

지금은 현대인들의 바쁜 생활로 음식 맛이 동질화되고 평균화·즉석화라는 대량생산의 이뤄지면서 과거에 맛보던 손맛깔은 느끼지 못한 채 증발돼 사라지고 있다.

주부들이 편리하게 재래시장과 대형할인점, 슈퍼마켓에서 물만 부으면 되는 반조리 식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손맛깔이 좀처럼 끼여들 여지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인스턴트화 됐다고 하더라도 김치만은 부부의 화목이나 어머니의 사랑이 흠뻑 담긴 손맛깔을 유지했으면 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욕심일 것이다.

바야흐로 김장철이 돌아왔다. 올해의 김장만큼은 동질화·평균화·즉석화 된 공장이나 슈퍼마켓김치로 뚝딱 처리할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주부들의 손맛깔을 내는 수고로움을 통해 남편들의 일탈행위(?)를 가두고 점차 인스턴트화 돼 가고 있는 어머니의 사랑과 부부의 화목이 가일층 넓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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