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전 히로히토 일왕(日王)이 사망했을 때 많은 충신들이 자살을 했다. 자살도 그냥 자살이 아닌 할복자살을 당시 70대의 은퇴 노병들이 했다. 나이로 보아서 여생이 얼마남지 않아 그들의 충성스런 죽음이 의미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일본 언론에서는 영예로운 죽음으로 연일 보도됐다.
명분이 있는 죽음이라는 것이 그런 죽음을 유도하는 듯한 분위기마저 들었다. 군국주의적 단면을 보게되어 두려움에 피가 거꾸로 솟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보도되는 자살소동을 보면 명분도 아니고 충성도 아닌 형편없는 죽음에 불과하다.

초기인간이 정글속에서 도구도 무기도 없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인내와 지구력 덕분이다. 인간보다 휠씬 빠르게 움직이는 말과 치이타 마저도 인간에게 굴복당했던 것은 인간은 끈기와 인내의 장거리선수이고 타동물은 단거리선수였기 때문이라고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해석한다.

한편 영하 50도의 혹한에서도 순록을 찾아 사냥을 떠나는 이누잇(에스키모)족이나 자신의 체온보다 높은 맹서를 견디며 활동하는 아프리카 여러민족들을 보며 인간은 질기고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세상 살다보면 때론 골치아플 때도 있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닥치기도한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이겨내고 승화시키는 힘을 가진 것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힘이기도 하다.
인간에겐 살려는 강한 욕구만큼이나 죽고싶은 욕구도 있다고 프로이드가 말했듯이 “아이고 죽겠어, 정말 죽고 싶어!”를 연발하며 살아가고 있질 않은가. 이렇듯, “죽겠어! 죽고 싶어!”를 말한다고 정말로 죽겠다는게 아니라고 다들 알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빨리 죽어야지” 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사실 더 오래 살고 싶어 한다는 것쯤은. 그래서 3대 거짓말중에 1순위에 속한다고 한다.

그러면 정말로 자살해서 죽는사람은 어떤사람이길래 스스로 목숨을 끓는 것일까. 죽기가 쉽지 않은 만큼 앞서 말한 할복자살처럼 매우 용기있는 자야말로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사실 죽기까지 많은 다짐과 각오가 필요하기 때문에 자살하려는 사람은 주변에 어떤 방법으로든 본인의 자살의도를 알린다. “나 요즘 죽고 싶어”라고 가족 또는 가까운 친구, 의지하고픈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말하거나, 일기장 또는 편지에 유언장 비슷한 글들을 남기곤 한다. 이런 행위들이 사전에 발각되면 자살동기는 사라지고 어떻게든 다시 살아 보겠다고 용기를 내어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으로 바뀌게 된다.
그렇기에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난 이유는 지금보다 더 진화하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인데, 자살로 추락하고 만다면 삼복더위에 인간을 위해 목숨을 내어주는 견공조차 비웃을 것이다.

오늘부터는 주변에서 “죽고싶다 또는 살고 싶지 않다, 죽겠다”라는 말은 해오면 그냥 해보는 소리인지 자살의도인지 한번쯤 귀기울여 주는 넉넉한 마음씨를 가져보자. “무엇이 자넬 그렇게 힘들게 하나?”하고 이야기를 들어준 뒤에, “죽으려면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나?”를 꼭 물어봐 주자. 정말 죽으려는 사람은 “수면제, 농약” 등의 구체적인 방법을 즉시 제시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빨리 요보호해야 함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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