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신라의 왕도(王都)임을, 부여, 공주는 백제의 왕도임을 자랑한다. 나라의 수도가 있던 지역으로 당시 정치, 경제, 사회의 중심지이며, 그 역사적 산물이 아직도 살아 있는 문화도시임을 자랑한다. 하다 못 해 안동 같은 도시는 뿌리깊은 양반의 고장임을 자랑하며, 이를 상품화하기에 바쁘다.

이런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은 쉽게 도출될 수 있으며, 지역민들의 공감을 얻거나 도시 상품화(city marketing)에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우리 청주는 아직도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청주의 문화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하기 전에 우선 청주문화를 이끌어 온 주체가 누구였는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느 지역이든 주된 문화의 창조자와 선도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문화의 주체들은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를 만들어가며 지역 정체성을 형성해 간다.

그럼 청주의 문화를 만들어왔던 주역은 과연 누구일까?

우리는 흔히 양반 가문임을 은근히 자랑한다. 그래서 없는 족보도 만들고 묘지도 크게 단장하곤 한다. 또 청주가 선비의 고장, 양반고을임을 강조한다. 아니 강조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선비문화의 흔적이 차별성있게 다가오지 않으니 그것이 문제다.

그렇다고 청주에 천민문화가 주류를 차지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살기 좋은 자연 환경을 끼고 중앙에 필적할 만큼 지역세력이 강성했던 지역이다.

그럼에도 청주 역사와 관련된 중요한 사건을 살펴보면 대부분 이름 없는 민중들과 관련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금속활자로 ‘직지’를 인쇄했던 스님들, 임진왜란 당시 청주성 탈환에 앞장섰던 의병들, 외세의 침략에 맞서 동학농민전쟁에 앞장섰던 농민들, 일제치하 독립을 위해 앞장서 피를 흘린 애국지사들….

청주 역사의 큰 줄기는 이렇게 영웅호걸이 아니라 이름 없는 대다수 민중들의 몫이었다. 지금 21세기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지식정보 시대이다. 이 시대의 주인공은 왕이나 영웅 혹은 특정계층이 아니라 변화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정신이 충만한 개개인들이다.

이들의 힘은 월드컵과 대통령선거를 통해 표출되면서 이제 새로운 문화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청주문화의 주체가 누구일까라는 질문의 답이 ‘민중’이라면, 좀더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우리 고장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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