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모님이 거주할 집을 짓게 된 적이 있다. 집을 지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복잡한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어서 10년은 더 늙는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이다.
그 중에서도, 앞으로 부대끼며 같이 살아야 할 동네 사람들과 마찰이 생기는 일이 가장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공사 차량들의 빈번한 통행, 먼지와 소음 발생, 공사인부들과의 사소한 언쟁 등 공사기간 중에도 문제가 끊일 날이 없었다.

마침 그 동네에 민원을 잘 넣기로 소문난 사람까지 있어서 구청에다 진정서를 낸 일도 있었다. 부모님은 참을 줄 아는 분들이셨기에 조용히 넘어갔고 우여곡절 끝에 완공을 했다.
이사를 하고 살면서 드디어 동네 사람들과 화해작전에 들어갔다. 이웃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도 하고 동네 경로당에도 찾아가고 했지만 유독 진정서를 넣었던 뒷집에 사는 인상 고약한 젊은이는 친해지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던 중 사건이 생긴 것이다. 잘 아는 분으로부터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풍산개를 한 마리 얻어 오셨는데, 데려 온 바로 다음 날 강아지가 없어진 것이었다. 여기저기 찾던 중, 뒷마당 구석에 핏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는 강아지를 발견한 것이다. 강아지가 너무도 의젓하고 정이 가서 평생을 이 놈과 같이 하리라고 마음 먹은 것이 바로 어제인데, 이렇게 되다니 부모님에게는 너무나 충격이 되었던 것이다. 자식잃은 부모처럼 속이 몹시 상해 수소문을 해 본 결과, 그 날 마침 풀어 놓았던 뒷 집 진정서 젊은이네 개 두 마리가 한 짓이었다. 뒷집 젊은이는 강아지 값을 물어 주겠노라고 했지만, 아버님은 거절하고 새로운 제안을 하시게 된다.
“당신네 개가 두 마리 있으니까, 혹시 나중에 새끼를 한 번 낳거든 나에게 한 마리 주구려. 그러면 되잖소” 이에 젊은이는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이렇게 해 화해 작전이 마무리 됐다.

부부간에도 싸움이 일면, 화해하기가 쉽지 않다. 화해를 해야겠다고 느끼지만, 자존심 상하고 방법도 궁색하다. 사회적인 합의가 쉽게 도출되지 않는 것도, 화해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분위기에서부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협상우위에 있을 때 상대에게 모질게 한다든지, 협상열세 상태일 때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유아적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앞에서 합의하고 뒤에서 교묘히 뒤집고, 타협의 제스처로 한 가지를 양보하면 모두를 요구하고, 협상 테이블에서 흥분과 무례를 앞세우는 일이 많다.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고, 토론을 통해 논리적으로 부족하다면 깨끗이 상대방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대신 받아들인 쪽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순환이 계속돼야 하는 것이다.
화해나 타협에도 작전과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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