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의 노인부양이 당연시 되었던 전통사회에서는 가족내 여성이 주로 모든 수발을 감당해왔다. 그 여성이란 주로 며느리로써 시집가면 당연히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고 교육 받아왔던 여성이다. 아들을 낳아 대를 잇게 해줘야 했고, 자기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묵묵히 가사 노동의 일꾼으로 일해야만 했다.
노부모가 병이라도 들면 운명이려니 하고 병수발을 해야만 했다. 시아버지가 중풍(뇌졸증)이라도 걸리면 빨리 돌아가시길 바라는 마음을 내색도 하지 못하고 속만 태워야 했다.
이렇게 힘든 시집살이를 강짜라도 부릴라치면 내 사랑 낭군은 곁에 있지도 않았고 노려보고 있을 시어머니 눈이 무서워 참고 감내 해야만 했다.
한 치매할머니가 자녀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버려졌기 때문에 자녀가 있으면 들어 오지 못하는 무료 요양 시설에 들어 올 수 있었다. 우울증이 심했고 한 마디도 기억하지 못하는 문제의 할머니였다.
그런데 한 복지사가 아리랑 노래를 불러주고 나니 잊어버렸던 말(기억)들이 생각이 났는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이틀 동안 똑같은 노래만 불렀다.
“청사초롱에 불 밝혀라. 잊었던 낭군이 다시 돌아온다.” 하며 식음을 전폐하고 불렀다 한다.
이 할머니의 일생은 버림받은 일생이었다.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았고, 바람 피우는 아들을 두둔하던 시어머니로부터는 구박받았고, 오늘에 와서는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았다.
평생 바람피우던 남편이 가끔씩 돌아와 잠자리해 얻은 자식이 6명이나 되는데도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문제 행동을 감당해 낼 자식은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바람 피우던 남편이 얼마나 미웠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종사(一夫從事)를 고집했던 할머니들의 삶은 분노를 표출하지 못하고 가슴속의 한으로 삭혀야만 했었나보다.
이러한 한과 스트레스가 할머니를 치매에 걸리게 했을텐데도 자식들이 그걸 이해할 리가 없는 것이다.
옛날 여자들은 부모공양도 잘하고 일부종사하며 희생을 감내하고 잘도 참아왔는데 요즘 여자들은 왜 못참는가 라고 비난을 하겠지만 그동안 사회는 급변했기 때문이다.
가족의 기능 중 양육의 기능은 대리 보육기관이나 학교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부양의 기능 역시 노인병원이나 요양시설 등의 사회부양체제로 전환되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부 (며느리) 역시 바깥 사회에서 활동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어 집안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적어졌다.
가족의 기능이 재충전의 기능과 성적, 정서적 지지기능으로 점점 축소되어가는 경향이 되었으니 옛날처럼 일방적으로 며느리의 의무를 강요할 수 없게 되었다. 이혼이 너무 쉬운 사회가 되었으니 말이다.
한 노인대학에서 “청사초롱에 불 밝혀라. 가셨던 낭군이 다시 돌아온다.” 하며 옛노래를 불러주니 많은 할머니들이 “어휴” 하며 눈물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이었나 보다.
그런데 똑같은 노래를 대학생들에게 불러주니 두 눈만 멀뚱거리기만 했다. 떠난 낭군이 다시 돌아온들 누가 받아 주겠는가 하는 이상하다는 눈초리이다.
이렇게 세상은 바뀌었다. 남자들이 버림받는 세상으로…
할아버지(남자)보다 할머니(여자)의 치매 발병율이 높은 것은 비단 할머니들이 더 오래 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이 될 만큼 삶 자체가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이젠 자신의 동반자가 자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지 배려하며, 수시로 청사초롱에 불을 밝혀 성적, 정서적 지지자로 살아야 서로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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