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생전 모습.

1920년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리미니에서 태어났다. 페데리코 펠리니가 태어난 리미니는 소읍이기는 했지만 해안가에 있어 카니발과 서커스, 그리고 순회 보드빌 극단이 자주 공연을 벌였고, 어린 펠리니는 낮부터 밤까지 학교에 가지 않고 그 공연장에 앉아 있었다.

다니던 가톨릭계 학교를 뛰쳐나와 그는 서커스 단원이 되었고 이후 만화가, 신문기자, 만평가, 작사자, 그리고 개그 작가로 활동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중 젊은 여배우 줄리에타 마시나와 알게돼 결혼했으며,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후 로베르토 롯셀리니 감독의 조감독으로 일하게 된다.

드디어 1950년 자신의 유랑극단 시절을 투영한 ‘청춘군상’으로 데뷔했으며, ‘길’(1954)을 통해 일약 주목받는 감독으로 부상한다. 이어 ‘절벽’(1955), ‘카비리아의 밤’(1956) 등을 통해 현대 하층계급의 영혼구제의 길을 모색했고,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달콤한 인생’(1960)을 통해 부패한 로마 부르조아 사회의 이면을 장대한 벽화로 만들어냈다.

이전 작품들로부터 변화를 꾀한 ‘8 1/2’(1963)과 ‘영혼의 줄리에타’(1964) 등을 통해서는 모더니즘의 신기원을 열었다.

펠리니 감독을 한 마디로 어떤 유형의 감독이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펠리니의 영화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흔적들을 남겼고, 몇 차례에 걸쳐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네오리얼리즘에서 시작했지만 그 길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영상언어의 길을 탐색했다. 이후 그밖에도 ‘사티리콘’(1969), ‘아마코드’(1973), ‘오케스트라 리허설’(1979), ‘여자의 도시’(1980), ‘진저와 프레드’(1986), ‘인터비스타’(1987) 등의 작품이 있으며 로베르토 베니니 주연의 ‘달의 목소리’(1990)를 유작으로 남기고 1993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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