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각 주체들이 함께 지역의 비전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진통과 해결 노력을 통해 스스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것, 이것은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지역에서의 당연한 수순이며 중요한 절차라 할 것이다. 얼마 전 제4차 국토종합계획 수립이 마무리되면서 각 지역에서는 이를 구체화할 비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지역의 비전을 만든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지역의 각 주체간 상충된 견해를 수렴해야하고, 미래를 보는 시각도 종합겷섟窩岵막?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거 지역이 누리던 영화(榮華)만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경우도 있고, 타 지역과의 단순한 내용 비교에 유난히 집착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지역의 향후 좌표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지역주체들이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혜안(慧眼)의 깊이가 지역의 흥망성쇠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잉글랜드 두 지역의 경우가 이를 잘 입증해주고 있다.

잉글랜드의 중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링컨(Lincoln)市는 인구가 약 8만4천명 정도이며, 로마제국시대 때는 런던과 함께 영국의 주요도시를 다투던 도시였다. 그러나 퀸 빅토리아시절, 런던에서 에딘버러까지의 주요 동부해안 철도노선이 토지소유자들의 강력한 반대로 링컨市를 벗어나 인근 네웍(Newark)을 지나가게 되면서 링컨市는 ‘내륙의 섬’과 같은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접근성 열세로 인해, 농산물로 번창하던 중심산업들은 주변의 보스톤(Boston)과 스파딩(Spalding)에 비해 경쟁력이 뒤쳐지게 되었으며, 시내 술집과 레스토랑은 근처 와딩턴(Waddington)의 대규모 공군기지에서 간헐적으로 진행되는 나토훈련이 있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재는 인근 고속도로와의 연결, 런던간 직통 철도노선 개설 등의 도시교통망 확충, 그리고 지역개발기구(RDA)와 유럽연합(EU)으로부터의 개발기금 유치에 기대를 걸면서 도시의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한편 잉글랜드의 링컨(Lincoln)市가 로마제국시대 한때 런던과 주요도시를 다투던 도시였다면, 코츠월드(Cotswold)의 거점인 사이렌세스터(Cirencester)는 런던에 이어 제2의 도시로 번성했던 곳이다. 코츠월드는 런던에서 서쪽으로 약 150㎞ 떨어진 첼튼햄 동쪽 일대를 가리키는데, 옛날 영어로 ‘양떼와 오두막집이 있는 언덕’이라는 뜻으로서 광대한 비탈길과 깨끗한 물로 영국을 대표하는 울 제품의 산지가 되었지만 19세기를 고비로 석탄을 채취할 수 없게 되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과거 번영을 구가하면서 잉글랜드를 대표하던 이들 도시들은 근대화의 상징인 철도교통의 중심에서 멀어지면서 각기 침체의 늪에 빠졌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링컨市는 과거 손쉽게 잡을 수도 있었던 기회(철도교통망의 중심)를 놓치고 장기간의 지역침체라는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나서, 그 기회를 다시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반면 코츠월드는 지금도 열차가 들어오지 않아 옛날 생활을 계속해올 수 있었던 장점을 살려 지역 이미지를 높여가고 있다는 점에서 링컨市와 대비된다.

현재 코츠월드는 이런 이유로 영국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전원지역이 되었으며, ‘가장 영국다운 전원마을’로 명성이 높다. 코츠월드 동물원에는 일년에 약 30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유럽은 물론 동양(특히 일본)에서 ‘예쁜 마을’을 보기 위해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항상 분주한 곳이기도 하다.

예로 든 잉글랜드의 링컨市와 코츠월드의 경우는 충북의 지역계획수립과 관련하여 유용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과거 철도교통의 중심을 대전에 넘겨주었던 청주가 그렇고, 이들 교통수단과 멀리 떨어진 지역(괴산, 보은)의 비전 설정과 관련해서도 그러하다.

지금 각 지역의 비전을 만들면서, 지역주체들은 지역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요인을 간과하거나 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다른 지역과의 여건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정책수단과 결과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반문해 보아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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