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남북공동선언 1주년. 그 열광하던 환호가 불과 1년만에 시들해졌다. 진전이래야 시드니올림픽 남북 동시입장, 두번의 이산가족상봉과 군사접촉, 3회의 적십자회담, 네번의 장관급회담, 다섯 차례의 경협실무접촉 그리고 북한어린이합창단과 교예단의 서울공연 등이 고작이다. 북한으로 보면 실속을 챙겼지만 우리는 가시적 효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별로 얻은 것 없이 1년을 보낸 셈이다.

북한은 6·5지지선언 정부·정당단체연합대회와 지지공동결의문을 채택하고 그것도 모자라 주1회 실시하던 사상교육도 4회로 늘리고 사상이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상검열단까지 가동하고 있다.

올 신년사에서는 “올해 우리는 조국통일위업수행에 결정적 진전을 이룩해야 한다”면서 “6·5공동선언이행, 민족적 공통성에 기초한 연방제방식 통일지향이 주요과제”라고 선언했다. 이에앞서 12월6일 평양방송은 ‘북남공동선언이행은 거족적 애국사업’이라는 프로에서 “북남공동선언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과 남측의 연합제안의 공통성을 살리고 장차 연방제통일로 나가는 길을 명시함으로써 북과 남이 조국통일을 위한 공동의 설계를 가지고 확실성있게 나갈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고 연방제 통일론을 펴기도 했다.

그리고 “북한의 현실적 군사위협이 해소될 때까지 주적개념을 유지한다”는 우리의 국방백서에 대해 북의 조평통은 “반통일행위”라고 비난까지 했다. 공동선언은 했지만 통일방안은 이렇게 다르다. 사실 연합과 연방은 같을 수가 없다. 연합은 여러 주권국가들의 단순협의체이고 연방은 미국과 같이 통일된 주권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북한식의 통일방안외 다름 아니다. 이러니 진전될 리가 없다.

우리는 그동안 공동선언에 고무돼 북한에 고분벽화 보존비 10만불을 비롯 쌀 비료 의류 등을 지원해 왔다. 그러면서 경의선 철도 및 도로복원공사도 착수했다. 그러나 북한은 별로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괜실히 우리만 흥분해 호들갑을 떨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 역시 너무 매달리는 듯해 보기 민망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7일 송년간담회에서 “우리는 명년 상반기에 방문하길 기대하고 있다. 새해들어 북측과 본격적으로 날짜를 잡아갈 생각”이라고 밝혀 상반기 방문이 거의 확실한 것처럼 했다. 답방이 지연되자 김대통령은 지난 6일 현충일행사에서까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답방약속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두 정상간의 약속이니 이뤄질텐데 너무 조급해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실 온다고 크게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 답방보다는 상호 이해와 협력을 통해 남북한이 전쟁의 위협없이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절실한 것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측은 답방에 너무 집착해 있는 것 같다. 북측이 요구하는 전력 50만KW를 준다면 당장이라도 올 지 모르지만 이건 외교가 아니다. 북측 상선이 우리 영해를 침범하고 우리 어선이 북방한계선을 넘었다고 발포하는 것을 보면 북측은 장 그대로다. 공동선언이행도 내부용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우리내부에선 북측과 똑같이 주한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폐지를 들고 나오고 있다.

국내에는 약 1만명의 간첩과 3만명의 동조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마당인데도 말이다. 물론 법이 시대에 맞지 않으면 고쳐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도 참작해야한다. 북한이 변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만 그들을 좋게 한다면 그건 자폭행위나 마찬가지다. 6?5 공동선언 1주년을 맞아 차분히 점검해야 한다. 국민들의 대북정책지지도도 작년 82%에서 58%로, 10년안에 통일될 것이라는 의견도 57%에서 30%로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의 대국민 설득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간 우리측이 끌려다녔다고 보는 시각 때문이다.

경제협력도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선에서 하고 대북지원도 국민의 동의를 얻어해야 한다. 정권을 위임받았다고 독선해선 안된다. 국민의 지지가 낮은 것은 대북창구가 3개월동안 가동되지 못하고 있는 데도 원인이 있겠지만 그보다도 그동안 국정운영을 잘못해 온 데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일단 물꼬를 텄으니 여유를 갖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 조급해 하면 일을 그르치기 쉽다.

유연한 대응이 후에 성과로 나타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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