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하였다. 한 개인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데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성을 갖기 마련인 것이다. 그 첫 단계로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것이 가정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가정이 이런 저런 이유로 파탄, 해체를 맞는 경우가 너무 많아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행복의 파랑새, 가정에 있다

쉽게 만났다 쉽게 해어지는 풍조를 비롯하여, 성격상의 부조화도 이혼의 중요 사유로 대두되며, 결혼 후에도 다른 사람과 사귀는 문란한 이성교재로 파탄을 맞는 경우까지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경제적 빈곤층에서 생계형 자살자까지 속출하는 세태여서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

정신적 갈등이 심한 현실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는 우울증 환자가 가정을 쉽게 버리는 모습도 자주 보도되는 상황이다.
일확천금의 환상에 빠져 강·절도 행각을 벌이다 가정의 파탄을 맞는 경우까지 속출하고 있다.

가정과 이웃을 소중히 아는 철학의 부재에서 비롯된 비극인 경우가 많다.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메테롤링크의 작품중 ‘파랑새’라는 것이 있다.

두 사람의 어린 주인공이 ‘회상의 영역’ ‘밤의 궁전’ ‘숲’ ‘행복의 전당’ ‘미래의 왕국’ 등을 두루 편력하면서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를 찾아 다녔지만 어느 곳에서도 그것을 찾아내지 못한 체 집으로 되돌아온다.

그들은 절망하였고 기운이 빠져 지친 체 주저 안고 말았다.
그러나 바로 그때 아름다운 새 소리가 들려 그쪽을 바라보니 그들이 그토록 열심히 찾아다니던 그 파랑새가 자기 집 새장 안에서 울고 있는 것이었다.

아주 가까이 자기 집에 있는 그 소중한 파랑새를 외부 세계에서 찾으려고 무던히도 헤매었던 것이다.

진정한 행복, 참으로 좋은 것은 어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아주 가까운 내 주변에 있는 것이라는 진리를 일깨워 주는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 주변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 그들의 파랑새를 가정 밖, 외부에서 찾으려고 애를 쓰는 것을 본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일은 그러한 외부지향적 추구는 시간 낭비에 허망한 결과만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정말 귀하고 값진 것은 내 가정, 내 가족 안에서 나 스스로가 발견하려고 애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다시 한번 상기하여야 할 일은 격변하는 세계 환경 속에서 우리의 삶다운 삶을 이어나가고, 키워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삶을 둘러 싼 세계의 변화 모습을 똑똑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하여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에 우리가 어떻게 적응하여야 하겠는지를 지혜롭게 생각하여야 하겠다는 것이다.

가정은 내 삶이 여무는 터전

끝없이 그리고 신속하게 변화를 거듭하는 환경 속에서 ‘공룡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융통성 있는 적응의 생리를 터득하여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외부 조건, 돈이 많아야 한다거나, 지위가 높아야 한다든지, 남보다 우월해야 하고, 남보다 잘 나야만 하는 외형, 겉치레에 집착한 나머지 자기를 망각하여 정말로 귀하고 값진 가치를 잃고 말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파랑새를 찾으려고 멀리 떠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가정, 내 자신 안에서 찾도록 노력하여야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파랑새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이야기의 핵심이다.

겉모습이 너무 화려하고 휘황한 사물이 주변에 많아 우리의 시각을 흐리게 하지만 현혹되어서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다. 나의 소중하고 값진 삶의 가치는 내 집, 내 가정, 내 주변에 있음을 바로 인식하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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