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제 기분대로 뱉어 낸 말들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끓어 넘치는 양은 냄비 같은 나라안이 더욱 혼란스럽다.

이라크 추가 파병 논란만 해도 대통령은 신중히 결정한다고 하는데 청와대 안보 관련 참모는 주한 미 2사단 배치 연계 설을 흘리는가 하면 이라크 파병 문제에 관해 누구보다도 말조심을 해야 할 정무수석은 당당하게 파병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가관인 것은 반대 발언이 신문에 대서특필되자 “술 먹고 한 소리를 그렇게 쓰면 되나” 라며 적반하장 격으로 책임을 언론에 돌린 정무수석의 말 배짱이다.

정치인 말 산처럼 무거워야

‘경계인’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경계해야 할 간첩혐의자 송두율 교수 사건에 관한 장관들의 말 잔치도 만만치 않다.
“설사 김철수라고 하더라도 처벌할 수 있겠나” 라며 법무부 장관은 그를 동정했고 문화관광부 장관 역시 “(송두율의 혐의 내용은)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 없다”며 국가정보원까지 무시하는 본분을 망각한 발언들을 했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송두율 두둔 발언’ 파문을 빚은 강금실 법무장관과 이창동 문화부 장관이 출석해 의원들의 집중 추궁을 받았는데 강장관은 공식 사과하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으나 이장관은 정확한 보도가 아니었다면서 나름대로의 소신발언을 계속했다.

“우리 사회 표현의 자유라든지, 남을 관용하고 이해하는 문제라면 이는 문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므로 당연히 문화부 장관이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며 “장관에게도 표현의 자유는 있으며, 다만 고위 공직자로서 말에 더 큰 책임이 뒤따를 뿐”이라고 장관은 주장했다. “宋씨의 간첩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아직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하며 지금 판단을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장관의 소신을 들으며 모든 정치인이 ‘경계인 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혼란스러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거듭되는 말실수로 최근 보직에서 물러 난 해양수산부 장관의 경우를 다시 들추지 않더라도 말이란 함부로 내어놓을 것이 아니며 특히 정치인의 말은 무겁고 신중하기가 산과도 같아야 할 것이다. 말을 삼가고 조심하라는 뜻으로 ‘혀 아래 도끼 들었다’ 는 옛 속담이 있다. 제가 한 말로 인해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으니 말을 항상 조심하라는 뜻일텐데 성경에도 경솔한 말 한마디 때문에 자식을 잃은 입다의 이야기가 전한다.

구약성서 사사 기 11장에 등장하는 ‘입다’는 출신이 기생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용맹한 장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았다. 그러나 이웃 나라가 이스라엘을 침략하자 사람들은 입다를 군대의 대장으로 삼는다.

우쭐해진 그는 전쟁에 나가면서 하나님께 “제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평안히 돌아오게 된다면 가장 먼저 대문에 나와서 영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라는 서원을 한다. 마침내 그는 전장에서 승리했고 고향으로 금의환향했다.

그런데 입다를 가장 먼저 영접한 사람은 자신이 가장 사랑한 무남독녀였다. 춤을 추면서 환영하는 딸을 본 입다는 옷을 찢으며 슬퍼하였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이었기에 그 약속을 지켜야 했다.

말 잘하는 인재 하나가 없나

생각 없이 한 말 때문에 사랑하는 딸이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한 마디의 말로 인해 죽음에서 건져지기도 하고, 죽게도 만들 수 있으니 말이란 결코 함부로 다룰 것이 아니며 그래서 촌철살인 (寸鐵殺人)의 위력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촌철’은 단어 그대로 풀면 손가락 한 개 폭 정도의 무기를 뜻하지만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한 마디의 말이 수천 마디의 말을 능가한다는 날카로운 속뜻을 새겨 볼 만하다.

“어떤 사람이 무기를 한 수레 가득 싣고 왔다고 해서 살인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한 치도 안 되는 칼만 있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남송(南宋)의 나대경(羅大經)이라는 학자가 남긴 이 말은 선(禪)의 본바탕을 파악한 것으로 여기서의 ‘殺人’이란 물론 무기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속된 생각을 없애고 깨달음에 이르게 됨을 의미한다.

생각을 갈고 닦은 절제된 언어로써 대중을 감화하고 더하여 정국을 안정시킬 이 나라의 동량지재는 이토록 찾아보기 힘든 것인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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