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네 살, 아직 소녀의 티가 남아 있는 통통한 볼의 한 여인이 폐쇄회로 TV화면에 잡혀 권총강도 혐의로 전국에 수배되었다.

이 사건은 영화나 드라마 속의 설정이거나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닌 청주의 북부지역 새마을 금고에서 일어난 실제상황이었으므로 범인에 대한 관심 또한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색 티셔츠와 벙거지 모자, 흰색 운동화를 신고 분홍색 가방을 든 은행 권총강도의 모습은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었을 만큼 어설프기 짝이 없어서 사건발생 직후 금고 폐쇄회로 TV를 판독하던 경찰조차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단다.

주부강도 그 카드빚이 그 동기

장난감 권총으로 새마을 금고 여직원을 위협해 현금 1천500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던 여인을 두고 그녀가 대범한 강도인지 멍청한 강도인지 여론이 분분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범인이 얼굴을 가리려 하지 않았으며 TV에 수 차례 얼굴이 나와도 제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조선족 등 외국인일지도 모른다 했고, 혹자는 여자로 위장한 남자임이 분명하다는 추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얼굴이 공개된 뒤 한 시민의 결정적 제보로 탐문 수사 끝에 검거된 사건의 범인은 신용 카드 빚에 쪼들린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공개된 사진의 모습이 강도라기보다 강도를 만나 정신이 없는 새마을 금고의 손님처럼 보였던 이유가 그녀의 신분이 벗겨지면서 자연스레 설명이 되었다.

카드사로부터 거액을 대출 받아 주식에 투자했다 실패한 후 심한 채무 변제 독촉을 받아왔던 그녀는 새마을 금고 인근 소아과를 다니면서 이 금고의 경비가 소홀한 것을 눈여겨본 후 범행을 결심한다. 범행에 필요한 장난감 총 등을 준비한 스물 네 살의 어린 엄마는 여섯 살과 두 살 먹은 두 딸을 데리고 새마을금고에 침입했는데 범행을 저지르고 난 후 딸의 유모차에 빼앗은 돈 통 등을 싣고 달아났다.

남편도 직장이 없고 아이가 있는데다가 카드빚 독촉에 시달려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무모한 철부지 엄마의 앳된 목소리가 가슴에 돌처럼 무겁게 얹힌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카드 빚이 결국 평범한 가정주부를 은행강도로 내 몬 것이다.

현재 우리 주변의 신용불량자중 신용카드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은 207만 명으로 전체 신용불량자의 3분의 2에 이른다고 한다.

카드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제약을 받게 된 것도 문제이지만 최근 일어나고 있는 납치, 어린이 유괴, 은행강도 등 강력범죄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가족동반 자살사건 등의 배경에 예외 없이 카드 빚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부분적이며 일시적인 사회현상으로 간과할 일이 아니다.

시대적 모순부터 치유해야

이 시간에도 카드 빚에서 벗어날 마지막 해결책으로 범죄를 획책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있는 것이 사실일진데 그 범행대상이 바로 제삼자가 아닌 자신이나 나의 가족일 수 있다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답답하고 두려운 일이다.

1960년 제5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던 이범선의 소설 오발탄에도 극단적 선택의 설정으로 주인공의 동생을 권총강도로 등장시킨다.

양심에 따라 살고자 하는 주인공 철호는 양심의 끈을 놓아버리면 잘 살 수 있다는 전도된 가치관을 가지고 권총 강도를 하는 동생 영호 그리고 역시 가난을 견딜 수 없어 양공주 노릇을 하는 여동생 명숙과 대립한다.

즉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현실과 타협하는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간의 대립과 갈등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갈등 뒤에는 갈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병든 시대적 현실이 숨어 있다.

오발탄은 잘못 발사되어 목표를 알 수 없는 위험한 총알이다.
앞일을 생각하지 않고 기분대로 카드를 사용하다가 신용불량자가 되고 다시 범죄자로 전락하는 젊은 세대들을 보며 과거의 이야기라 무심했던 소설 오발탄의 불안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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