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서예공모전 중 가장 권위가 있다고 알려진 대한민국 서예대전과 대한민국 서예전람회가 심사과정과 관련된 비리로 망신살이 뻗쳐있다.

경찰의 조사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들 공모전의 심사위원들은 뇌물을 받고 서예대전 출품작을 대필해 주거나 출품작 내용을 직접 수정하여 출품자 이십 여명을 공모전에 입선시켰다고 한다.
물론 한국 서예협회 이사장과 이사로 활동중인 고명한 예술가인 이들은 그 대가로 자신의 그림을 거액에 팔았고 그도 부족하여 입상작 표구가격을 부풀려 수천만 원의 수수료까지 챙겼다니 기막힌 이재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서예공모전 혼탁상 드러나

더욱 한심한 일은 두 협회 역시 집행부와 친분이 있는 특정작가만을 계속해서 심사위원으로 선정하여 출품자들이 입상을 청탁하지 않을 수 없게 조종하는 등 심사비리에 깊숙이 연관되었다는 사실이다.

십 년 전에도 서예대전 심사위원들이 금품을 받고 작품을 대필한 사실이 검찰에 적발되어 협회이사장 등 십 여명이 구속된 일이 있으나 대필 작을 입선시키는 입선비리는 공공연한 비밀인 채 서예 공모전에 더러운 얼룩으로 남아 있었다.

이처럼 비리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은 공모전 수상여부가 서예계 등단의 유일한 인증 방식이며 서예학원을 열 수 있는 자격증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상횟수에 따라 점수가 쌓이면 각종 서예대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는 초대작가가 되는데 초대작가 타이틀을 가진 사람만이 기득권을 갖는 것이 서예계의 오래된 관행이어서 공모전 입상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고 서예인들은 불평을 하고 있다.
공모전 입상 이외에는 등단의 길이 없는 실정인지라 서예작가로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 중 일부는 서도의 연마에 매진하기보다 돈을 주고 상을 사는 방법으로 등단의 길에 에스컬레이터를 놓게 된 셈이다.

지금 국내의 크고 작은 서예 공모전은 100여 개에 이른다니 300만 명으로 어림되는 서예인구와 비교해보면 대단한 양이다.
서예 공모전 주최측은 입상에 혈안이 된 출품자들에게 접수비로 한 몫을 챙기고 이번 사건처럼 심사를 조작하여 다시 거액을 착복하는 경우까지 있으니 돈이 되는 사업을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각종 공모전에서 쏟아지는 입상자 또한 엄청난데 이번 대한민국 서예대전에서만 해도 응모자의 3분의 1이 넘는 6백65명이 입상자 명단에 올랐다. 가치 없는 수상과 함께 등단이 남발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혼을 펼쳐야 할 서예전이 실력의 연마 없이 이름만을 얻고자하는 사이비 예술가와 이들을 이용해 축재해보려는 약삭빠른 장사치들의 이해 관계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비리의 한판으로 비춰지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거액의 금품수수가 밝혀져 서예 공모전이 비난의 표적이 되었지만 대필에 의한 등단은 서예계만의 비리가 아니다. 몇 년 전 미술대전 심사과정에서도 입상비리가 논란이 된 바 있고 문학계의 경우 역시 작가로 행세하고 싶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쉽게 등단을 하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이런 사람들 덕에 먹고사는 소위 문예지라 이름 붙은 치졸한 몇몇 잡지들은 수백 권의 책만 팔아주면 대필과 개필로 작품을 만든 후 누구에게나 등단작가라는 이름을 쉽게 붙여 주는 것이 현실이다.

부당한 돈 거래 등단 막아야

그래서 웬만한 사람이라면 모두 시인이나 작가, 서예가, 화가, 사진작가인 희한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 아닌가 싶다.
누구라도 예술을 사랑하며 예술에 관심을 갖는 것은 훌륭한 덕목이다.

그러나 지적인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돈과 거래된 등단을 한다면 그렇게 얻은 이름이 허접쓰레기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예술인들의 뼈아픈 자성이 요구된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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