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베트남 결혼주선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에 시집와 우리 고장 진천에 사는 한 베트남 새색시의 시집살이 면모를 소개하고자 한다.

올해 1월 16일 한 베트남 새색시 팜00(21)씨가 매서운 추위에 덜덜 떨면서 인천공항 입국장에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마중 나온 남편 정모씨(41)가 팔을 벌려 반갑게 포옹을 하고 등을 토닥거리며 두툼한 털옷을 입혀주었다.

두 달 전 베트남 현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 초야를 보낸 후 귀국하여 신부가 뒤이어 입국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오다 이날 극적인 재회의 기쁨을 갖게 된 것이다.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새색시

그 하나만을 믿고 이역만리 한국 땅 까지 찾아온 남국의 새색시는 남편의 환대를 받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남편과 함께 마중 나온 가족들에게 서투른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린 후 청주행 버스에 올랐다.

베트남과 많이 다른 차량 행렬, 아름다운 산야, 줄지어 늘어선 고층 아파트단지를 내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어느새 남편 정씨의 어깨에 기댄 채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잠이 들었다.
이어 시골집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친척들과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반갑게 맞이했다.

시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친척어른들과 동네어른들에게도 일일이 인사를 드렸다.

모두 이국의 새색시를 신기한 듯 살펴보면서 “참 예쁘게 생겼다” “참하게 생겼다” “피부색이 우리와 똑같다”는 등 감탄하면서 “올해 몇 살이냐?” “친정부모는 다 계시냐?” “형제는 몇 명이냐?”여기 저기서 던지는 질문에 새색시는 눈만 깜빡거린다. 어려운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피곤할 텐데 네 방에 가 쉬어라”하는 시어머님의 배려로 몇 시간 동안 단잠을 잔 후 저녁시간을 맞았다. 진수성찬이 가득 차려진 상이 나왔다.

시어머니가 옆에 앉아 새색시의 식사를 일일이 챙겨주지만 우리 음식이 입에 척 맞을 리 없다.

대충 요기를 한 후 알아들을 수 없는 가족, 친지들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지루하게 자리를 지킨 후에야 시댁에서의 첫 밤을 보내게 됐다.

그로부터 1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베트남 며느리에 대한 자랑이 대단하다.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 집안을 말끔히 청소하는 일이나, 만나는 사람마다에 대해 공손히 인사를 잘 하는 일이며, 누구에게나 매우 친절하여 동네 사람들의 칭찬이 대단하다는 자랑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늘어놓았다.

행복을 느끼는 새 색시·신랑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며느리가 직접 밥을 짓고 반찬도 만들어 온 가족이 맛있게 식사를 했다고 흐뭇해하는 것이었다. 또한 농촌의 여러 가지 힘드는 일도 힘겨워하지 않고 척척 잘 해낸다는 자랑도 잊지 않았다.

베트남 새색시가 한국에 들어 온지 40여 일이 지난 후 구정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시어머니는 새색시를 데리고 시장을 보러 읍내로 갔다.

이것저것들을 산 끝에 닭도 한 마리 사서 장 보따리 속에 넣고 지키고 있어라 그녀에게 맡기곤 다른 물건들을 고르고 있는데 며느리가 뛰어 오면서 “엄마 닭! 엄마 닭!”하고 부르짖었다.
사연을 알아보니 이웃 아주머니가 자기 것으로 착각하여 그녀의 장 보따리를 가져가 놀라서 외쳤던 것이다.

그 후 이웃사람들은 베트남 새색시의 별명을 “엄마 닭”이라 부르며 오늘도 좋은 이웃으로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새 신랑 정씨도 베트남 새색시의 사랑을 느끼며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생업에 열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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