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信이 넘치는 사회
不信이 넘치는 사회
  • 이장희(극동정보대 비서행정과교수)
  • 승인 2003.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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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이 왼 통 나라안에 그득 찬 느낌이다. 정치, 행정은 물론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믿을 것이 없다는 인식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 이러고도 살기 좋은 사회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참으로 가난하고 슬프게 억눌렸던 지난날 그 괴로움을 이겨내려면 잘 살게 되어야 한다고 믿어 무슨 일이라도 해야만 했고, 사람 사이의 관계 같은 것은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우선, 살아야 하고, 살되 잘 살아야 하는 게 생존의 논리가 되는 그런 사회였던 것이다.


결과, 바른과정 절차 거쳐야



그런데, 이제 사회는 진전하여 살되 올바르게 살아야 하고, 나의 삶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 훈훈하고 따뜻하며 아름답게 엮어져야 한다는 정도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 믿음직한 사회는 어느 누가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어야 할 과제이지만 불신을 치유할 적극적인 조치에는 등한한 실정이다.

신뢰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의식이 크게 바뀌어야 하고, 조직의 논리나 단체의 생리나 집단의 역량이 점차적으로나마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조직이든 하는 말이 속뜻과 겉 뜻이 같게 표현되고, 그렇게 해도 손해보다는 이익이 된다는 경험이 쌓여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가 아무리 찬란하고 멋져도 그것을 이루게 된 과정과 절차가 올바르지 못하거나 정당하지 못할 경우 절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보편화하여야 하는 것이다.

신뢰란 어떤 의미에서는 상식이 깨지지 않는다는 데 대한 확신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가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합의의 근거 위에 성립되는 기대와 충족의 확실성인 셈이다.

믿음을 사야할 상식이 빈번히 깨지고, 그릇된 상식이 오히려 영광과 혜택의 수단이 되는 사례가 없어야 신뢰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학교나 사회에서 배운 원칙과 상식이 그대로 통해 결코 그대로 행하여도 손해를 보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부모나 선생님이 가르친 대로 행동하는 것이 보편화하고, 자연스레 모범이 되는 상황으로 이어져야 남에 대한 믿음이 싹틀 수 있는 것이다.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사회의 건설은 우리의 지상과제가 되고 있다. 우리 세대에 이일을 이루어 놓지 않으면, 그 결과는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후손들의 사회는 어려움이 한층 커지게 될 것이다.

믿음직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상식이 상식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쉬운 일인 것처럼 보이는 데,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나 어이없게 상식이 깨지는 일들이 생기고 그래서 이제는 상식이 깨지는 것이 오히려 상식이 되고 상식이 지켜지는 일이 비상식이 된 그런 사회가 되어 가는 경향과 추세를 어떻게 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하겠다.

프랑스의 철인 라 로슈호크는 ‘상대방을 믿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속아도 속은 것이 정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신뢰 사회 구축에 힘 모아야


우리는 서로가 믿음으로 써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 정당하게 되지 않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이 폐기되면 인간사회는 마침내 와해되고 만다는 것을 역사의 교훈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사회는 믿음이 있는 사회이다. 사람이 모여서 함께 살아갈 때에 원만한 삶의 바탕이 마련되자면 믿음이 세워져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허물어지고 만다.

경제건설에 못지 않게 인간관계의 초석이 될 믿음의 영역을 넓히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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