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승씨 관련 사건이 온통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그가 한 개인, 자연인이 아니고 우리나라 최고의 권부 ‘청와대’라는 조직의 구성원이었기에 관심과 문제의 초점이 되었던 것이다.

현대를 흔히 ‘조직의 시대’라고 말한다. 우리는 태어나는 시각부터 땅에 묻히는 순간까지 언제, 어디서나 여러 종류의 조직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조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은 허술하게 따로 따로 살아갔던 옛날사람들보다 남을 의식하는 정도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커졌다.

남눈치 살피며 사는 현대인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볼 것이냐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하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특히 권력을 등에 업고 있는 처지라면 더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나 청와대가 그 점을 소홀히 한 게 문제를 한층 복잡하게 만든 것으로 세인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자 데이비드. 리스맨은 현대인의 정신적 특징을 ‘타자 지향성’에서 찾으려 하였고, 룰로 메이는 ‘레이더 인간’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하려 했다. 우리는 항상 남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분주하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양길승씨 자신이나 행적을 조사하는 청와대는 너무 안이하게 대처했던 게 사실이다.
성공하는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인정받고, 자연스러운 존경과 용이한 접근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권력이 국민의 인정, 공감을 사지 못하고, 친근과 존경에서 멀어지게 된다면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될 일이다.

그러면, 한 개인처럼 권부도 ‘소외의식’에 빠지게 될 것이다. 사람마다 용모와 개성이 다르듯 개인이나 단체 조직이 느끼는 소외의식의 행동양식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애써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대처를 하는 모습이다. 잘 안 되는 일들이 모두 언론 때문이거나 악운의 탓, 가학 풍조 때문이라 돌림으로써 자기 책임을 철저하게 배제하려는 개인이나 조직의 행태가 만연하는 풍조로 나타나는 것이 우려되는 것이다.

의식의 반응 유형은 무의미형이다. 이 경우는 흔히 무규범형의 반응을 나타내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자기는 어차피 남들에게 보통 방법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니 “너희들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나도 너희들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되지!”하는 식의 철저한 자기 고립의 전략을 쓰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기존질서나 규범체제에 대한 경멸이나 무시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불안감과 우려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증폭된 국민 의혹 풀어줘야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고립형 사람들은 자기 목표의 달성 수단으로서의 방법을 거부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타인과의 관계를 의식적으로 단절하는 ‘영광스러운 고립유지의 의식경향’을 갖는 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곧 시중 신문으로부터 멀어져 정부에서 발행하는 정부 홍보신문을 보게 될 전망이다.

이런 문제들이 언뜻 보기에는 돌발적, 우발적으로 발생한 하나의 사건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현대사회라는 진날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많은 일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얼마쯤 역설적으로 들리지 모르나 이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문제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단지 그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양길승씨 관련 사건도 역시 본인이나 청와대의 시각이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 의문점을 조속히 풀어주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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