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남짓 물류 수송 체계가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6억여 달러의 수출 차질을 빚은 바 있다.
다행히 정부가 화물차주 연대의 요구를 거의 수용하는 선에서 정상화되기는 했지만 이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그리 고운 편이 아니다.
화물연대의 불법적인 집단 행동에서 보듯이 민성(民聲)이 높아지는 것은 시대적 조류라 하더라도, 이번 사태를 보면서 노동자의 기준이 어느 선으로 그어져야 할지 몰라서 매우 헷갈리는 요즘이다. 화물연대(정확히는 민노총 산하 전국운송하역노조 소속 화물운송 특수고용 노동자 연대)는 화물차주들의 모임이다.

소위 차를 소유한 사람이 화물 회사에 차를 지입하여 회사의 차로 등록한 다음 개인적으로 영업을 하는 그런 사람들의 모임인 것이다.
물론 이들도 화물차 운전을 하니까 노동자로 본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차를 소지 못하고 회사에 소속되어 운전을 하는 대가로 급료를 받는 그야말로 순수 노동자와 이들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고 본다.
화물연대 측이 자기들을 노동자로 보고 노동 3권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은, 대통령도 노동자이므로 대통령의 노동 3권을 보장해달라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들은 차주이면서 운전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므로, 학문적 용어를 빌리면 이들은 자본가이면서 사용자이다. 또, 운전사로서 이들 자신에게 고용된 피고용자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만일 노동 3권을 허용한다면 운전사인 자신이 사용자인 자신에게 노동 3권을 행사해야 하는 자가당착적 모순이 생기게 된다.
이들의 요구는 결국 자신에게 해야할 것을 물류 중단을 볼모로 국민과 정부에 대하여 한 불법적 집단행동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대란은 화물연대 소속의 사람들이 수출입 화물을 볼모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킬 때까지 불법적으로 강경 투쟁을 한 것이고, 정부도 이에 적절히 대응 못하고 열흘 여를 질질 끌려가다가 거의 백기를 드는 형국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국가의 권위와 위기관리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만 것이다. 특히 빨간 헝겊에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라고 쓴 흰 글씨의 이들의 구호는 보는 이의 가슴을 매우 섬뜩하게 하였다. 물류가 멈춰지면 혼란이 올 것이고, 국가 신인도는 추락하고 결국에는 IMF 이상의 국가 경제의 충격을 맞을 것이 분명한데, 그것으로 세상 바꾸려고 한 것인지는 몰라도, 마치 시계바늘이 되돌려지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혹시 세상이 바뀌면 노동자의 천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망상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이들의 집단 행동은 나라와 국민과 함께 공멸하자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었다.
또, 설령 노동자의 천국으로 세상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한 대에 1억이 넘는 화물차를 소지한 이런 사람들이 노동자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많은 국민들이 화물연대 측의 불법 행동에 굴복한 듯한 정부 당국의 태도에서 적지 않게 분노하기도 하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기도 한다.
화물연대 측이 요구하는 경유세 인하, 고속도로 통행료 인하 등은 사실상 자신들이 부담해 할 것을 국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다른 이익집단에게도 평등한 혜택이 가야함은 당연한 일이다.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정부 당국의 앞으로의 조치에 많은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참여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석 달 남짓 되어가고 있다. 젊은 바람이 나라에 새 기운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당초의 국민적 기대와는 달리 소위 포퓰리즘적인 정책에서 필연적으로 오는 시행착오와 확신할 수 없는 즉흥적 정책에 대하여 적지 않게 불안해하고 있다. 이익집단의 비논리적 집단적 불법행동이 용인되고 관철되는 것을 보면서, 사회적 기강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것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조금씩 점차 널리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 요즘의 현상이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는 정치리더들의 행태, 교육현장의 혼란과 갈등, 산업현장의 노사분규, 지역 이기심의 무조건적 표출 등등 이 모든 것들이 혼재되어 지금 엄청난 국민적 불안과 불만을 만들어내고 있다.

‘물류를 멈춰서 세상을 바꾸자’라는 그 발상에서 보듯이, 남이야 어찌되든 세상을 뒤집어서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상관없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나라와 세상을 그렇게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뭉쳐질 수 없는 소위 콩가루 사회가 될 것이고, 20세기 초 근대화의 대열에서 낙오되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듯이 21세기초에 와서도 다시 세계화의 대오에서 낙오되기 십상이다.
이번의 물류대란이 가져올 후유증은 ‘물류를 멈춰서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만큼이나 오래도록 우리 경제를 아프게 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전 국민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서 더욱 그렇다.
(서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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