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60여개국에서 6천만명 이상의 팬을 가지고 있는 TV 만화영화 심슨 가족(The Simpsons)은 맷 그로닝의 원작만화를 1989년 노먼 프로덕션 필름과 폭스 TV에서 제작한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영화 시리즈다.

미국의 텔레비전 방송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골든타임에 방영되고 있으며 미국 애니메이션영화의 스타일을 재창조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는 이 만화영화의 가장 ‘호머 심슨’이 영국 BBC방송 여론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미국인’으로 선정되었다.

심슨, 무능하난 정있는 사람

온라인 독자 8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 20.7%가 심슨을 가장 위대한 미국인으로 응답했으며 그 뒤를 이어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2, 3위를 차지했다.

링컨 이외에도 워싱턴, 루즈벨트, 플랭클린, 클린턴 등 순위에 오른 기라성 같은 전직 대통령들을 제치고 심슨이 1위에 등극했다는 이번 조사 결과는 다양한 추측과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우선 심슨은 만화영화의 주인공이지 실제 인물이 아니다. 인기 있는 만화 캐릭터가 세계의 위인전에 올라 있는 산 역사 속 인물들을 물 먹이고 가장 위대한 미국인으로 뽑혔다는 사실은 코믹 풍자만화인 심슨 가족보다 더 풍자적으로 느껴진다.

더구나 심슨 가족의 아버지인 호머 심슨은 무능하고 사리분별 또한 확실치 않은 멍청한 가장으로 비범한 위인은 커녕 평범한 필부 축에도 끼어주기 힘든 캐릭터다.

무력한 가장인 호머는 남편 바가지 긁는 재미에 사는 부인 마지와 아버지를 괴롭히며 조롱거리로 만드는 아들 바트, 딸 리사, 아기 매기와 하루도 편할 날 없이 들볶이며 산다. 직장에서도 사고만 저지르는 무능한 호머지만 그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정스러운 인간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위대한 미국인으로 심슨을 선택한 서구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지도자나 위인의 기준은 강하고 냉철하며 폭력적인 엘리트가 아니라 모자라고 손해보는 듯하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한다.

심슨처럼 어수룩한 사람을 일컬어 숙맥(菽麥)이라고 부른다. 숙맥(菽麥)은 사서오경 중의 하나인 춘추(春秋)의 주석서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말인데 숙맥불변(菽麥不變)을 줄여서 콩과 보리인 숙맥(菽麥)이라고 했다.
주자(朱子)에게 형이 있었는데 지능이 떨어져서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었다. 콩과 보리의 모양이나 쓰임이 확연히 다른데도 능히 분간하지 못했으니 어리석고 사리판단을 못하는 사람을 빗대어 숙맥이라 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세상물정에 어둡거나 순진무구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바뀌었다. 너나할것 없이 잘난 체하는 사람들 속에서 숙맥이 빛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자신들의 역사 왜곡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자신들이 위대한 역사라고 믿었던 것들의 허상을 벗겨내고 있는데 일본의 교과서 왜곡보다도 한 수 위의 사례들이 속속 치부를 드러낸다.
미국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그들의 최초 정착지를 평화적 정착에 성공했던 뉴잉글랜드 지방이라고 가르치지만 그 전에 유럽인이 인디언을 몰살시키고 정착했던 버지니아 지역의 역사는 은폐하고 있다.

선한 모든 것들은 위대한 것

급진적 사회주의자였던 헬렌켈러를 시각과 청각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영웅으로만 그리고 있고, 1차 대전에 참전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전후 국제연맹을 결성했던 대통령 윌슨 역시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을 뿐 인종분리 정책과 외국에 대한 군사개입을 주도했던 사실은 묻어 두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데모스테네스는 위대한 것이 모두 선한 것은 아니나 모든 선한 것은 위대한 것이라는 어록을 남겼다.
BBC뉴스 인터넷판의 ‘가장 위대한 미국인’ 선정 보도를 보며 비범한 대통령이 평범한 만화 캐릭터보다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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