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짐승과 뭍짐승이 싸우는 전쟁터에서 양다리 걸치기로 제 몸을 보신하다가 낭패를 당하는 박쥐 얘기가 이솝우화에 나온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혼돈의 상황으로부터 살아 남기 위하여 박쥐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고, 또 그런 사람이 쉽게 택하는 곳을 우리는 회색지대라고도 한다.

이솝은 이런 회색지대에 있는 사람을 박쥐에 비유한 것이다.

이들은 박쥐처럼 새들이 우세할 때에는 날개 짓을 하면서 새들 편에 서다가, 뭍짐승이 우세하면 다시 뭍짐승이라고 우기면서 뭍짐승 편에 서서 침을 튀기면서 화합이나 안정을 내세우는 것이다.

민주주의, 학생 희생의 결실

서양의 이솝우화에도 이런 얘기가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양의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시공을 초월하여 박쥐같은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경계인’이라는 말로 그런 회색지대에 있었던 사람들을 미화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경계인’들이 마치 지난 세월동안 분단의 희생양이 된 것처럼, 아니면 70년대의 유신독재체제에 저항하고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했던 인사인 것처럼 평가되기도 한다.

물론 그들 중에는 진정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해외에서 뛰어다닌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적의 적은 동지’라는 논리로 유신체제보다 더한 독재세습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에 동조하거나 편향되어서 우리 남한 당국을 적극적으로 비판했던 사람도 있다.

반체제 활동이 반드시 민주화운동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고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런 데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지난 반만년 역사 동안 가난에 굶주렸던 서민들의 배를 채울 만한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눈을 뜨기 시작했었고, 젊은 학생들의 희생의 결과로 민주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 동안 해외에서 활동해온 회색지대 사람들의 반정부 행적이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해외보다는 국내에서 직접 유신 정권이나 군사 정권에 대항하다가 모진 고문에 죽음을 맞았거나 분신 등으로 항거했던 수많은 젊은 학생들의 고귀한 희생과 노력이 오늘의 민주 사회를 만든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회색지대에서 반체제·반국가를 외치던 인사들보다는 거리로 나와 투쟁했던 학생들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희생을 우리 사회의 더 큰 가치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솝우화의 박쥐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최근에 입국한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씨의 그동안의 친북 행적과 그의 애매 모호한 전향 의사와 사죄의 변을 두고서 지금 우리 사회가 상당한 논란과 혼돈 갈등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를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다양하고 일부에서는 그의 친북 활동이 냉전시대 희생물의 소산인양 비쳐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많이 변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과연 그를 전폭적으로 포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수많은 학생들이 투옥되고 희생되었던 유신독재나 군사독재 시절에 그는 독일에서 무슨 활동을 했는가?

박쥐는 그냥 박쥐일 뿐이다

그는 북측에 충성 서약을 했고 북측의 자금지원을 받았으며, 적극적인 반한 친북 활동을 하였다. 자신은 단순한 축전을 보냈다고 하지만 그는 북측이 우리보다 비교적 잘 살았던 70년대에 북측에 편향되어 최근 귀국 직전까지 이른바 북측에 충성서약을 매년 해왔던 것이다.

또 동족 상잔의 전쟁을 일으켰고 수백만 주민을 아사지경까지 몰고 간 김일성 부자 세습 정권에 대한 비판을 유보하면서, 자신이 북한으로 간 것을 마치 유신독재에 항거한 경계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선택이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학자적 양심 운운하며 날마다 달라지고 있는 그의 언행에서, 진솔한 학자의 모습을 찾기는커녕 이솝우화 속의 박쥐의 모습을 연상하게 되어 우리의 실망 또한 커지고 있다.

베일 속에 가려졌던 한 경계인의 신화가 그렇게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박쥐는 날짐승도 뭍짐승도 아닌 다만 박쥐일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너무 가혹한 것인가?

(서원대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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