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지나고 명절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을 묻는 온라인 설문 조사를 보았다. 특히 명절 스트레스를 묻는 앙케트 방은 통계 결과에 대한 다양한 답 글들로 인해 가히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 중에서 눈길을 잡았던 한 설문 조사를 보자. 명절이 오면 더 힘들어지는 주부들의 가장 참기 힘든 스트레스는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네 가지 항목의 답을 하도록 했는데 투표결과가 다소 의외였던 것 같다. 1위는 놀랍게도 27.89%가 답한 하루종일 노는 남자들을 볼 때였다.

그 다음 순위로 무리한 음식장만 (24.6%), 시댁 우선, 친정은 나중 (21.9%) 이었고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고 한 사람이 15%를 차지하며 순위의 꼬리를 잡고 있었다.

명절 남녀 역할 수정 불가피

주부들의 이러한 의견들에 반발하는 남성들의 목소리가 과격했다. 맞벌이일 경우는 몰라도 전업주부라면 당연히 가사의 몫은 여자여야 한다며 명절에 남자가 운전한다고 투덜대지 않는데 치사하게 따지고 들지 말자는 애교 있는 항변도 있었지만 전 세계 남성 중 카드, 통장 다 뺏기고 용돈 타 쓰는 나라는 대한민국 남성 하나인데 여성들이 복에 겨워서 저런다고 분노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어린 나이에 군대가서 고생하고 결혼하면 처자식 먹여 살리려 철야에 휴일근무에 시달리다 은퇴 후엔 찬밥 신세 되어 공원이나 전전하는 불쌍한 남자들이 이젠 명절 때 앞치마 두르고 음식 장만까지 할 판이라며 한탄하는 목소리는 너무나 비통해서 마치 햄릿이라도 보는 듯 극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인터넷 설문 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주부의 연령층이 낮은 이유도 있겠지만 남성의 이러한 항변에 수긍하는 주부는 거의 없었다.

먹고 마시느라 지친 남편을 대신해 운전도 도맡아 한다는 한 여성은 차가 막혀도 코 골며 자고있는 남편과 아이 키운다 생각하지 않으면 못산다며 비아냥거렸다.

그만큼 여성의 목소리가 당당해진 것이다. 컬티즌에 메인으로 올려져 있는 젊은 주부의 글은 같은 여성의 눈에도 파격이었다. ‘다 같이 고생해서 서로 위로 받자는 버거운 결론 대신 다 같이 고생은 그만두자는 결론은 왜 안되나. 껍데기만 남은 상징, 추석 상을 왜 엎어버리지 못하는가?’로 시작된 그녀의 발언은 항간의 유행어대로 ‘이쯤 하면 막 하자는 겁니까’의 수준에 이르렀다.

통째로 빈둥거릴 수 있는 가을 휴가였던 추석은 결혼과 동시에 ‘이 날 만큼은 며느리의 온갖 고전적 의무에 충실해야 할 날’로 시어머니에게 차압당하고 말았다고 억울해하며 만 악의 근본인 껍데기만 남은 상징인 추석 상을 왜 엎어버리지 못하는 가로 글을 맺었다.

그러나 이런 유의 전통을 폄하하는 생각이 절대 다수 고학력 신세대 여성들의 가치관이라면 그냥 웃고 지나칠 일이 아니다.

명절풍속 개선의 여지 있다

핵가족 단위로 연휴의 즐거움이나 만끽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지면서 명절 풍속도도 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장에서 구입한 차례 상 용 식품이 차례 상을 채우는 것은 이제 보편적인 일이고 한층 발전하여 아예 한 세트에 얼마 짜리 차례 상이 상품화되어 있다고 한다.

콘도 등 관광지에는 합동 차례 상이라는 것이 간편하게 마련되어 있어 타향에서도 조상에 대한 예를 잊지 않도록 친절하게 배려하고 있다니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일이다.

그 뿐이랴. 벌초를 하러 떠나는 것도 교통정체로 몸살날 일이라 용역업체에 벌초를 맡겨 버린다는데 임협이 1만7천기, 농협도 1천500기의 벌초를 관리해주고 있다고 한다. 민간업자나 고향 주민들에게 위탁하는 경우도 많다 하니 오히려 직접 조상의 묘를 찾는 사람들이 융통성 없고 미련한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본래 차례(茶禮)는 간소한 약식 제사를 일컬었다. 제물의 풍성함보다는 조상에 대한 공경스런 마음이 근본이었을 것이니 짜증을 참으며 억지로 차리는 차례 상을 조상들이라고 해서 기꺼워하시겠는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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