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30년 전과는 판이한 여성상을 보고 있다. 오히려 여성 우위의 상황이 자연스레 보이기까지 하는 현실이다. 인간사에 있어 가장 진리스러운 말은 “만물은 변한다”라고 볼 때 여성관도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고 그래야만 할 이치이다.

여권이 일찍부터 신장되었다는 미국의 경우를 보아도, 그들의 독립선언서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인간’은 구체적으로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美 여성도 초기 남성에 예속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은 모든 주민이 자유롭게 거래를 펼 수 있는 순수한 민주국가이지만 다음의 경우는 예외다. 도덕적 퇴폐와 논쟁의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그렇다”고 말했다.

당시 여성들에게는 참정권이나 토지나 재산의 소유권이 없었다. 남편의 반려자로서 출산, 육아, 농삿일, 양계, 빵 굽기, 돼지 잡는 일, 소세지 만들기, 약초 재배, 약 다리기, 옷 만들기, 가족 돌보기 등등의 일에 열중하면서 남편을 돕는, 남편을 위한 노동력이었다.

여성 자신을 위해서는 토지나 재산을 가질 수 없고, 고등교육의 문도 굳게 닫혀 있었으며, 청교도적 윤리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절대 복종을 강요받는 상황이었다.

유럽에서도 오랜 옛날부터 여성은 “날 때부터 열등한 존재” 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관이나 아담의 갈빗뼈를 가지고 만들었고, 아담을 도와주도록 만들어졌다는 이브에 얽힌 성서의 서술에 따라 근본적으로 경시 혹은 멸시, 천시가 밑바탕에 깔려 있으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까놓고 드러내기가 거북해서 필요이상으로 친절과 대우를 내세우는 위선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서양에 있어서의 여성관은 초기 ‘여성의 악마화(demonization of woman)’과정을 거쳐 ’여성의 우상화(idolization of woman)’ 로 변해 왔다.
성실과 근면의 표본이었던 ‘아담’을 타락시킨 이브에 대한 잠재적 원한 때문에 여성을 악마시 하는 경향이 중세의 마녀사냥이나 사회적 제한규정 속에 맥맥히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심사숙고한다면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를 비롯해 자기와 함께 삶을 엮어나가는 아내나 사랑스러운 딸들이 악마시 되는 상황에 대한 죄책감을 승화시키기 위한 심리작용으로 여성우상화 풍조가 나타나는 모순된 결과도 연출했다.
이제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자본주의 경제의 일반화, 가속화에 따라 물질만능주의 경향이 곳곳에 스며들게 되면서 이번에는 여성의 상품화라는 풍조까지 생겨나게 됐다.
미스코리아나 미스유니버스 같은 미인대회에서 시장성이 높은 여성미를 선발·선전해 피부감각적인 소비심리를 자극함으로써 돈을 버는데 이용하자는 것이다.

내용을 정확히 파악해 보면, 방법이 세련되고 절차가 복잡해서 착각을 해서 그럴 뿐 서양에 있어서의 여성 취급은 동양의 남존여비 보다 훨씬 여성멸시적 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그래도 동양에서는 어느 경우에도 여성을 악마시한 적은 없다는 사실만 보아도 서양보다는 여성에 대해 온정적이었다 할 수 있다.

지난날에도 ‘휴머나즘’이라 해서 인간을 존중한다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서양인들은 그 인간 속에 여성이나 어린아이나 미성년자, 부르주아가 제외되는 모순된 개념이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차별적인 개념이었다.

여성관 시대에 맞게 변해야

그러나 이제부터는 전 인류적 차원에서 모든 인간을 포용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정립된 인간 이해를 바탕에 깔면서 인간의 존중을 무엇보다 앞세우는 철학과 사상이 확립되지 않고는 자칫 민족이기주의나 국가독선주의, 계급우선주의 때문에 전면적 파국에 이르지 않을 수 없고, 남녀관계의 위기를 넘길 수 없을 것이다.

미래창조의 의욕과 용기와 지혜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 의해 배양 육성돼야만 21세기의 세계와 한국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삶의 질이 한층 인간다워질 것이다.

/ 청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birdie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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