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오는 얘기에 이런 것이 있다. 옛날 어느 동네에 두 양반 집이 있었는데, 두 집이 워낙 가난하여 그 집의 마님들이 호구지책으로 새우젓 장사를 하기로 의논하였다.
그런데, 둘이서 막상 새우젓 통을 머리에 이고 길을 나서고 보니 차마 상놈들에게 ‘새우젓 사려’라고 높임말을 쓰기엔 그들의 자존심이 너무 상할 것 같아 고민을 하게 되었다. 궁리 끝에 한 마님은 상놈 새우젓 장수 뒤를 따라가면서 그 사람이 ‘새우젓 사려’라고 소리를 치면,‘나 두…’라고 소리치기로 하였다.

기계, 부품이 제 구실 잘 해야

또 다른 한 마님은 새우젓 장수를 따라가면서 두 사람 다 그렇게 하기는 뭣해서 혼자 다니기로 했는데, 이 마님은 ‘새우젓 사려’라고 하는 대신 ‘새우젓 사려면 살 것이고, 사지 않으려면 사지 말아라’라고 외치면서 다녔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비록 새우젓 장사를 할망정, 양반의 위엄을 지켜야 되겠다는 옛 양반들의 허세이기도 하고, 체통을 지킴으로써 최소한의 자기 존재를 인식하려는 몸부림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비록 희화적인 얘기일지라도 이 이야기 속에서는 옛날에는 사회가 그래도 제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현상을 읽을 수 있다.
요즘 들어 신문지상이나 TV 등에 비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의 그림들을 보노라면 무언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기계가 잘 돌아가려면 기계의 부품들이 제자리에서 그 기능과 역할을 해줘야 하듯이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사회가 순 기능적으로 돌아갈텐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던 물류대란은 물론이고, 지금 한창 갈등을 빚고 있는 교단 갈등도 마찬가지이다.
소위 교사의 잡무 축소와 학교 정보체제 구축이라는 목적으로 준비를 해 온 NEIS라는 전산운용체제를 두고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은 사전 의견 수렴을 충분히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혼란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도 혼란을 자초한 교육 당국이 우선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곧 있을 전기 대학 수시 입학원서 접수를 앞두고 갈팡질팡 혼란을 빗고 있는 이런 현상은 국민들의 입장에서 너무 한심하고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빚어지고 있는 이런 혼란에 대하여 소위 진보적 인사로 평가되어 기용된 교육부 수장도 제 역할을 못하여 청와대 민정수석이 개입하여 결국은 전교조 측의 손을 들어준 꼴이 된 사태를 초래한 것은 참여정부의 능력의 한계와 권위의 추락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대통령이 그 직무를 수행하기가 어려워 대통령 해먹기도 어렵다고 하는 판국이니 다른 행정부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겠지만 이런 그림을 보려고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이-그것도 소위 젊은이의 바람 몰이로 된 것이긴 하지만-새 세상을 바라면서 출범시킨 정권인가를 의심하고 있다.
기대했던 새 바람은 어디 가고, 정권을 재창출한 여권에서도 선명성을 가지고 서로 다투고, 갈라 설 지경에 있다. 과연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진보이고 개혁인지 알 수가 없다.
5·18 광주행사에서 학생들의 시위로 대통령 일행의 진로가 막혀 경호에 허점이 노출되었는데도, 처음에는 단호히 대처하고 엄중 조처하겠다던 것이 하루만에 대통령은 경호가 비록 허술해도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더 좋다는 말로 더 큰 국민적 우려를 자아내는 대통령의 말에서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의 속내를 알지 못해 불안해하고 있다.
사태가 이러하니 국민들은 지금 심한 혼돈과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우리 사회의 혼란을 소위 철학에서 말하는 정반합(正反合) 현상으로 보고 순리대로 잘 풀려나갈 것이라고 낙관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의 상황이 그런 낙관만 할 상황이냐는 것이다.
뉴스에 비친 우리 사회의 그림 중에서 주위환경과 엇박자인 것은 NEIS 도입 반대 집회에 나섰던 전교조 교사들의 모습이다. 머리에 붉은 띠를 동여매고, 무슨 구호를 쓴 조끼를 입고, 불끈 쥔 두 주먹을 하늘을 보고 내젓던 그 그림이 자꾸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바르게 자라라고 가르치는 신분인데, 그런 모습을 학생들이 보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며,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사가 노동자로 보여서야

혹자는 어느 국회의원이 등원 첫날 파격적인 옷차림으로 개혁을 시도하는 시대인데, 뭘 그런 것으로 가타부타 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는 적어도 학생들에게 선생님으로서의 흠집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양반이 새우젓 장사를 하더라도 상놈과 차별되게 양반의 권위를 지키려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가르치는 아이들 생각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과연 교사들이 일반 노동자들과 같은 모습의 그림을 학생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바람직한가 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나라의 새싹을 기르는 일선 교사의 역할과 자리를 보아서 더욱 그렇다
(서원대학교 교수)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