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적 구조의 사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사회로 이행되는 과정의 진통과 파장이 크다. 화물연대 운송 거부 사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파문에 이어, 지난 광주의 5·18행사에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집단행동으로 대통령의 조화가 짓밟히고 대통령이 뒷문으로 입장해야 하는 초유의 공권력 무력화 현상이 빚어졌다.
단호해야 할 때 단호하지 못했던, 무원칙하고 무기력한 국정운영이 국가와 공권력의 권위를 훼손시키고 있다.

시민사회는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참여가 바람직한 사회이기는 하지만, 국가 공권력이 훼손되고 집단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국가전체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겨주는 이 상황이 진정 성숙한 시민사회에서 보여지는 행태인가를 다시 한 번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누가 우리의 공익을 대변할 것인가.
우리의 시민사회는 서구의 발달경로와는 달리 식민지적·신식민지적 조건, 그리고 분단상황에서 기본적으로 외세와 외세의존적 국가권력의 영향력 하에서 주로 '바깥에서 안으로', '위로부터 아래로' 형성·발전되어왔다.
급속한 자본주의화는 아래로부터의 시민사회의 형성 조건을 제공하였으며, 또한 국가지배와 비민주성과 정당성의 취약함은 시민사회 민주세력의 활성화와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가져왔다.
87년 6월 민중항쟁 이후에 시민사회 민주세력은 급격히 활성화되어 국가권력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우리의 시민사회는 한편으로는 국가로부터의 자율성이 증대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적인 세력구성이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사회세력들간의 불평등과 갈등이 더욱 표면화되었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이익집단간의 갈등이 그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시민사회의 특수성은 사회문화적인 생활양식과 의식의 측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친미사대주의와 민족주의, 유교적 권위주의와 서구적 자유민주주의, 연고주의와 경쟁주의, 반공주의와 민중주의 등은 시민사회의 경쟁적·갈등적 의식 및 생활양식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의식형태들과 이데올로기들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위치가 서로 다른 시민들에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쳐 시민사회의 구성과 갈등구조를 복잡하게 하고 있다.
특히 과거 권위주의 정권과 독점자본의 지배에 저항했던 사회운동세력들이 시민운동세력과 민중운동세력으로 분화되고 환경, 교육, 여성 등 새로운 쟁점들이 부각되면서 집단간 이해의 차이와 갈등이 표면화 된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계속되어 왔다. 충북도의 시·군 행정종합 감사에 관한 공무원노조와의 갈등, 화장장, 쓰레기 매립장에 관한 것 등이다.
시민사회의 정의적 개념 중의 하나는 '시민성(civility)'이다.
시민사회는 국가에 대한 잔여적 범주로서의 모든 사회, 일반 사회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영역이 아니고 모든 사회의 영역도 아닌 '시민적' 사회인 것이다. 바로 '시민적'의 본질이 성숙한 시민사회를 이루는 조건인 것이다.
첫째, '시민적'이라는 것은 모든 문제를 평화적인 방식으로(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규칙을 따르고 예의를 갖춘 시민들이 대화, 토론, 심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토론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다.
여전히 토론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공적인 문제에 대한 이성적인 심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토론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모든 문제가 폭력적 수단이 아니라 평화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해결되어야하는 '에티켓 사회(etiquette society)'가 되어야 한다.

둘째, 시민사회는 기본적으로 정당한 그리고 정통성 있는 국가의 권위를 존중하며 법을 인식, 인정, 존중해야 한다.
셋째, 시민사회는 법의 지배의 테두리 내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물론 시민사회는 정당하지 않은 자의적이고 독재적인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는 최후의 보루이며, 정의롭지 못한 법의 지배를 거부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정당한 권력에 대해서 법의 지배에 기초한 국가권력을 정당화해주는 민주주의 핵심적 지원세력이 시민사회인 것이다.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