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초기에 활약했던 김두한 이라는 한 협객(?)을 소재로 한 인기 TV 드라마 ‘야인시대’가 장안의 화제이더니만 요즘 들어 청주의 학교 안에서 이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되어 쓴 웃음을 짓곤 한다.
금년 들어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의 신입생들이 그들의 선배들에게 인사하는 것이 예년과 같지 않은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선배를 만나면 웃으면서 가볍게 목례 정도로 인사를 하고 지나쳤는데, 요즘 들어 학생들의 인사법이 마치 ‘야인시대’ 속의 김두한의 조직원들이 그들의 보스에게 인사하듯이 집단으로, 그것도 큰소리로, 허리를 거의 90도로 꺾은 자세로, 주위의 시선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예사롭게 지나쳤는데, 남녀학생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학생들이 그런 식으로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서 ‘양화(良貨)를 구축한 악화(惡貨)’의 형상을 연상하여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근자에 시청자의 인기가 최고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드라마로 지목된 것이 바로 이 ‘야인시대’와 최근에 막을 내린 모 방송의 드라마인 ‘올 인’이었다고 들었다.
소위 폭력과 도박을 정당화하고 미화시켰다는 것이 그렇게 된 이유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요즘 학생들의 인사법이 분명 이들 드라마가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부정적 현상의 한 예로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반드시 드라마의 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학생들이 인사를 하는 겉모습만을 보고 얘기한다면 소위 그런 조폭문화가 이제 학교 사회의 한 부분으로 자리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왜곡되고 질 낮은 조폭문화가 사회의 저변으로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느 시대이건 그 사회의 참 모습을 보려거든 그 사회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라고 했는데, 요즘 학생들의 인사법이 우리의 사회상을 비추는 거울이라 생각할 때, 이 같은 광경에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온 인사들이 투쟁과정에서 독재자의 지배방식을 배워 오히려 독재보다 더 독재적 성향을 보이는 것에서나, 이익 집단의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도 자기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여기는 이분법적 사고로 투쟁하는 것에서 본 것들이다.
소위 자기 조직의 논리에만 집착하고 이를 관철시키려는 경향은 우리 사회에 이미 그런 조폭적 문화가 알게 모르게 물들어져 있음을 보이는 것일 게다.
요즘은 보기 어렵지만 한 시대를 걸쳐 인기를 끌었던 헐리웃 웨스턴이나 마카로니 웨스턴 등의 서부 활극 영화에서 보는 재미는, 그 내용이야 어떻든 절대로 뒤에서는 총을 쏘지 않는다는 룰을 지키는 데 있었다.
‘야인시대’가 폭력을 정당화한 부정적인 면이 있음에도 시청자들의 인기를 유지하는 이유도 비록 주먹 세계이더라도 오직 주먹으로만 상대를 제압하는 룰이 드라마 속에 있고, 승패에 대한 승복의 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야인시대’ 속의 조직원 사이의 의리나 바르지 못한 권력자에 대한 초법적 폭력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서양의 ‘로빈 훗’이나 우리나라의 ‘임꺽정’같은 의적(義賊)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면서 일반 서민들에게 카타르시스적 대리 만족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논리적 타협과 승복의 아름다움을 택하기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는 것만을 선(善)으로 생각하는 오늘의 사회 현상에 대하여 그러한 면에서 오히려 ‘야인시대’는 비록 주먹을 휘두르지만 그 나름대로의 정도(正道)를 생각한다는 순기능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는 할 수 있다.
어쩌면 ‘서부 활극’이나 ‘야인시대’에서와 같은 룰조차 찾을 수 없는 요즘의 사회에서 시청자들에게 오히려 청량감이라도 느끼게 해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에서 폭력이 미화되고 그로 인해 뜻이 좋다면 의적과 같은 초법적인 행위도 용인되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역기능을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다.
오늘도 합창하듯 코가 땅에 닿도록 허리 굽혀 인사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선후배간의 우애가 돈독하겠구나 하는 느낌보다는 저러면 안 되는 데 하는 생각이 앞서는 건 그래도 학생들은 학교에서라도 반듯하게 배워야 한다는 뜻에서이다.
사회가 불안정하면 회귀적 성향을 보인다고 하는데, 학생들이 ‘야인시대’식 인사를 하는 것이 반지성적이고 비문화적인 사회로 가려는 그런 회귀적 현상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되는 요즘이다.
(서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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