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 장관의 새로운 패션이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인 이 장관은 자신의 옷차림 등 지엽적인 부분이 언론에 부각되는 것에 관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그가 평범한 대중이 아닌 장관의 위치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세인들의 관심을 떨치기는 어려울 듯 싶다.
취임식장에서부터 노타이의 캐주얼 차림으로 파격을 보이며 형식 파괴를 통한 권위주의 청산을 주장하는 장관의 말을 다시 새겨보자.
“공무원이므로 반드시 넥타이와 양복을 입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과 공무원으로서의 품위와 도덕적 엄격함을 지녀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영화감독으로서 해외를 다니며 그 나라의 문화부 공직자를 더러 만나 보았지만 그 누구도 복장에서부터 공무원 냄새를 피우는 사람을 보지 못했으며 복장이 자유로운 만큼 그들의 사고와 행동은 자유롭고 유연했다.”

장관이 표현한 공무원 냄새를 풍기는 옷차림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아마 넥타이를 단정히 맨 정장차림을 공무원의 청산되어야할 권위주의적 옷차림으로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무원이나 직장인들이 입고 있는 신사복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평범하게 통용되는 평상 근무복이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편안한 옷이라는 뜻의 라운지 재킷이라 불려진 신사복은 그 실용성 때문에 세계 제1차대전 이후에는 근무 복으로 정착되었다.
외국에 나가 관청을 견학한 일도 있지만 눈에 거슬릴 만큼 파격적인 옷차림을 한 공무원은 찾아볼 수 없었고 거꾸로 우리나라에서 어떤 격식의 틀에 맞춰 경직된 옷차림을 하고 있는 공무원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면 장관이 예로 들며 자신을 합리화했던 외국의 의상 매너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외국사람들이 옷차림에 유연한 사고를 지니고 있는 듯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저한 옷차림에 대한 전통적인 규칙을 가지고 있다. 조항으로 정해진 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지켜야 할 예절을 옷차림에도 적용시키고 있는데 OTP라는 약자로 매너를 정리하고 있다. 약자를 풀어보면 O는 occasion(경우에 맞는 옷차림), T는 time(시간에 맞는 옷차림), P는 place(장소에 맞는 옷차림)이다. 구구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옷차림에 대한 규칙과 매너일 것이다.
옷차림에 대한 까다로운 규정은 영화제 시상식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창동 장관이 감독상을 받았던 베니스 영화제는 기억이 없지만 임권택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했던 칸 영화제의 경우 행사장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이 턱시도를 입어야 했기 때문에 무심히 취재하러 갔던 기자들이 예복인 턱시도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허리선 가까이까지 길게 꺾여 젖혀지는 롤칼라를 반짝이는 새틴으로 선을 두르거나 감싸서 마무리한 다음 복대와 조끼 그리고 비단 선을 두른 바지를 함께 갖추어 입은 후 나비넥타이라 부르는 검정 보우타이를 매야 하는 턱시도를 입은 시상식 장의 임권택 감독은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평범한 신사복 차림이었다면 눈에 거슬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파격성이 어떤 의지와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다중이 모인 장소에서 자신의 위치에 걸 맞는 옷차림을 한다는 것은 좋은 이미지의 표출을 넘어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의 표시가 된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본이었던 우리의 정서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단정하고 상황에 맞는 옷차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유명인사의 부인들 중에는 옷차림 때문에 구설수에 오른 사람이 가끔 있기는 했다. 지난 대통령의 영부인이 집권 시절 미국을 방문했을 때 조선시대 왕비의 예복이었던 당의를 입어 독재정권의 실체라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고 방송에 나온 대권후보의 부인이 도에 지나친 사치스러운 의상을 입어 도마에 올랐던 경우도 있었다.

예로든 경우처럼 대부분 공인들의 도에 넘치는 옷차림이 항상 문제였는데 이번 이장관의 경우는 격식에서 모자라는 옷차림이 세인의 이목을 끌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옷은 당연히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거꾸로 옷이 사람의 성격과 행동을 규정하고 그것을 입은 사람을 도리어 지배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영혼이 자유로운 예술가가 이러한 구속을 참을 수 없는 권위로 느껴질 수 있음을 이해한다.
노타이 차림을 고수하는 이장관을 의아하게 바라보지만 이장관의 의견을 다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것도 그를 훌륭한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존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이창동 장관은 만인의 시선을 받고 있는 공인의 위치에 있음을 항상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수필가)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