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웅의 세상보기]특권층의 발호
[최종웅의 세상보기]특권층의 발호
  • 충청매일
  • 승인 2014.01.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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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다. 법치국가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뜻이다. 민주사회에서 법은 공권력을 의미한다. 사람을 잡아다가 구속할 수 있고, 풀어줄 수도 있는 권한은 경찰이나 검찰이 갖고 있다.

그래서 수사권을 쥔 경찰이나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을 공권력의 상징이라고 한다. 잘못을 하고도 경찰의 수사망이나 검찰의 기소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특별한 권력을 가진 게 분명하다. 그게 바로 특권층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출범하였으면 특권층은 일소되었어야 했다. 그래야 바른 정치를 한 것이다. 특권층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민주화가 덜 되었다는 증거이다.

이런 맥락으로 살펴보면 특권층도 시대에 따라 변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5·16군사정변으로 군인들이 정권을 잡은 시절은 법치라고 할 수 없었다. 군사정권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반체제 인사들을 군까지 동원해서 제압했기 때문이다.

경찰과 검찰은 정권안보를 위한 방편에 불과했으니 법보다는 권력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은 한낱 구호에 그쳤을 뿐이다. 경찰이나 검찰이 손을 댈 수 없는 계층이 바로 특권층이었다. 청와대, 중정, 육사 8기,  검경은 특권층의 비리를 알아도 수사를 하기는커녕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러니 특권층이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고, 특권층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특권층에게 부탁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줄 대기 경쟁이 벌어졌고, 사회정의가 무너지는 원인이었다. 군사정권을 타도하는 민주화가 특권층을 무너뜨리는 목표처럼 변질되기도 했다.

어쨌든 민주화가 되면서 특권층은 눈에 띄게 힘을 잃었다. 문제는 새로운 특권층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요즘 생겨나는 특권층은 권위주의 시절의 그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과거의 특권층이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면, 요즘의 특권층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 생긴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군사정권은 군사력으로 집권했지만 민주정권은 선거에 의해서 집권한다. 그래서 표를 얻는 것이라면 물불을 가릴 여유가 없다. 선거로 권력을 잡는 정치인들이 가장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것도 표를 좌지우지하는 세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법치를 강조해도 말발이 서지 않는 이유다.

선거로 정권을 잡고 표를 좌지우지하는 세력이 있는 이상 특권층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게 종교이다. 종교는 어떤 목표가 주어지면 목숨까지 거는 특성이 있다. 정치인들이 종교를 가장 두려워하는 이유다.

국가기간 시설인 철도를 파업해서 나라를 혼란하게 만든 주동자들이 절로 들어가 파업을 선동하는데도 속수무책으로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공권력을 희롱하듯 민주당, 민노총 등으로 피신해서 파업을 부추겨도 체포영장을 집행하지 못했다.

이보다 더한 일도 있었다. 연평도를 포격한 북한을 두둔하는 발언을 해도 조사 조차 하지 못했다. 이것을 바라보는 서민의 심정은 어떨까? 어떻게든 특권층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진 이유가 특권층의 횡포였다면 새로운 특권층의 발호는 민주체제가 위험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실체도 없는 새정치란 말이 먹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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