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오랜만에 또 다시 대통령 선거를 하게 된 것이다.
이번 선택은 21세기 한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지도자를 뽑는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평소의 불평·불만을 투표로 통해 시원하게 풀어볼 기회가 다시 찾아 온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국민에게 지도자를 감별하는 눈이 필요할 때다.
이 때를 같이 해 역대 대통령이 정치를 잘했는지, 못했는지에 대해 순위를 매기는 일은 미국 사회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가장 훌륭한(best) 10, 가장 형편없는(worst) 10 등이 그것이다.
미국에서 그 최초의 리스트는 지난 1948년에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하버드대학 아서 슐레진저 교수가 55명의 유명한 역사가들에게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요청했다고 한다.
반세기가 지난 후 그의 아들 슐레진저 2세가 32명의 전문가들에게 아버지와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놀라운 것은 그 결과다.
세월이 흘렀고, 새 대통령이 여려 명 등장했지만 위대한 대통령은 거의 그대로 였고, 끔찍한 대통령은 역시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서 밝힌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대통령에게 필요로 한 덕목은 시대 변화에 민감하지 않다는 점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느낄 때 그 정도는 돼야 대통령 감이라는 그런 일반적인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에게 위대한 대통령, 성공한 대통령이 과연 몇 명이나 되는지 반문해 본다.
지난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직을 떠난 뒤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통한 귀감을 사고있는 대통령은 없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이 앉고 있는 멍애다.
대선이 내일이다. 대다수 국민은 과연 누가 이 시대를 제대로 이끌고 갈 대통령 감이냐를 놓고 아직 고심하는 것 같다. 이들은 좀처럼 의중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후보들을 검증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결정이 어렵다면 이것만은 유념, 후회 없는 투표를 했으면 한다.
먼저 양심적인 인물이어야 한다. 거짓말을 잘 한다거나 과거행적이 거짓으로 엮어진 사람이라면 믿을 수가 없다. 믿지 못할 사람을 뽑아 놓고서 정치사회에서의 신뢰 회복을 바랄 수는 없지 않는가.
윤리·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이 아니라야 한다.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파렴치한 사람이라면 우리의 국적을 맡길 수가 없다.
참된 지도자는 균형 있는 사고를 지녀야 한다. 역사와 사회를 편향되지 않고 넓고 균형 잡힌 눈으로 보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민주주의의 신봉자여야 한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는 포퓰리스트 여서는 곤란하다.
안목과 결단력을 지난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비록 시류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거시적인 안목으로 사태를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이 지도자에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근시안적이고 자신의 영리에만 급급한 사람은 절대로 국민의 대표가 돼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책임을 질줄 하는 지도자가 요구된다. 민주주의는 책임정치이고, 책임에 대한 평가는 선거를 통해 이뤄진다는 통념이 이를 뒷받침한다.

참된 지도자는 어른이 될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사회가 어느 한 방향으로 편향되게 갈 때 과감하게 떨치고 나서 균형을 잡아주는 그런 어른의 덕목을 갖춘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이는 사회 안정을 위함이다.
호리유차(豪釐有差)면 천지현격(天地懸隔)이라는 옛말이 있다. 처음에 터럭만큼 벌어진 차이가 나중에는 하늘과 땅 사이만큼 벌어 진다는 말이다.
찍고 나서 후회하는 그런 선택을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만큼은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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