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은 그의 ‘국가론’에서 이상국가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상 인류가 그려 왔던 많은 ‘유토피아들’ 가운데 가장 최초의 것이었다. ‘국가론’의 중간 부분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철학자들이 임금이 되든가, 또는 이 세상의 임금들이나 군주들이 철학의 정신과 능력을 가지게 되고, 정치적인 위대함과 지혜가 하나로 되어, 지혜를 버리고 정권을 차지하려는 비속한 본성이 물러서지 않는 한, 국가들은 결코 여러 가지 악에서 떠날 수 없으며, 내가 믿기에 인류는 언제까지나 항상 악에서 떠날 수 없을 것이다.”

플라톤에 있어서 철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인류가 악으로부터 해방되는 일은, 철학자들이 임금이 되든가, 또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임금이 되는 것이다. 지혜를 버리고 정권만을 차지하려는 비속한 본성을 버리지 않는 한, 국가와 그 국가의 백성들은 항상 악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플라톤은 철학적 이념이 존재로 되는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떠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사실이 인간을 이념의 세계에 안주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므로 인간의 세계에서는 사유가 존재로 되지 않는다. 여기에 인간의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요사이 선거 때문에 시끄럽다. 대통령, 시 도지사 및 기초자치단체장, 그리고 지방 의원선거 등이 금년 내에 있기 때문이다. ‘대권’이니, ‘용’이니 하며 떠들어 댄다. 그러나 ‘대권’이니, ‘용’이니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렵다.

일본 이와나미 정치학사전에 의하면, ‘대권’이라는 낱말은, 일본의 메이지 헌법에 있는 독특한 말로, “넓은 의미에서 천황의 통치권이고, 좁은 의미에서는 제국의회의 참여 없이 행사할 수 있는 천황의 권능이다.” 그러나 현재의 일본 헌법은 ‘대권’의 존재를 부인한다. 그런데 어떻게 민주국가인 우리 나라에서 ‘대권’이 존재하는 지 알 수가 없다.

우리 나라에 ‘대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천황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의 대통령이, 이른바, 군주적, 제왕적 존재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제왕적 권력을 얻기 위하여, 수많은 정치인들은 서로 헐뜯고 비난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들이 유리한 쪽을 찾아 철새처럼 떠돌아 다닌다. 철학, 신의, 정의, 원칙, 그리고 신념 없는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그리고 국민을 볼모로 삼아 역사를 들먹인다.

그러나 역사는 무엇인가. 역사는 역사에 대한 해석이 있을 뿐이다. 역사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정치가들은 마치 자신들이 역사의 주인인 양 말을 한다. 우리들은 정몽주의 역사와 이방원의 역사를 나눌 수가 없다. 그러나 정몽주의 역사를 선택할 수는 있다.

인도의 영혼, 간디는 나라를 망치게 하는 사회의 큰 죄악으로 일곱 가지를 들었다. 그 첫째가 원칙 없는 정치였다. 해방후 몇 사람의 대통령들이 나왔지만, 대부분은 정권의 획득과 유지, 그리고 계속에만 몰두하였으며, 비진리와 부패, 그리고 무능의 길을 걸었다. ‘사사오입’, ‘삼선개헌’, ‘시월유신’, ‘체육관 선거’, ‘범죄와의 전쟁’, ‘내각제 위약’ 등 수많은 사건들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역사를 바로 세운다고 떠들어 대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는 어느 대통령이 바로 세울 수 있는 사물이 아니다. 둘째로는 도덕 없는 상업이었다. 돈을 버는 데는 원칙과 윤리가 있어야 하며, 사회적 책무가 존재하는 법이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그것은 물질로 욕망을 채우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노동 없는 부, 인격 없는 교육, 그리고 인간성 없는 과학이 나라를 망친다고 하였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른바 재벌, 입시 위주의 교육, 줄기 세포의 기술을 반성해야 할 때인 것이다.

여섯째로는 양심 없는 쾌락을 들었다. 쾌락이 인격과 절도를 벗어날 때는 인간과 사회를 타락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에 희생 없는 신앙이었다.

오늘날 자신들이 믿는 종교만을 내세워, 타종교의 진리와 자유를 억압한다면, 그것은 다른 하나의 종교의 죄악인 것이다. 단군상을 부수고, 절을 불태우며 불상을 파괴하는 일은 종교의 할 바가 아니다.

분단된 우리 나라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마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애국이니, 역사적, 또는 구국적 결단이니 하는 말은 정치인들 스스로의 욕망을 합리화하는 일이며, 자기 미화의 수사학일 따름이다.

나라를 지키는 애국자는 언제나 국민이었다. 역사를 통하여 보면, 나라를 망친 자들은 언제나 위정자들이었다. 권력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철새처럼 떠돌아 다니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사라져야 한다.

걸핏하면 역사를 끄집어내지만, 진실로 역사를 두려워 해야할 사람들은 정치를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도 정치인들의 반성과 지혜가 요구되는 때이다.

/충북대교수·시인·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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