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교내에서 한 선생님이 지나가는 남학생 둘에게 물었다.
“너희들 어디 가니?”
아이들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맞으러 가는데요” “누구에게?”
“M 선생님께요”
“흠, 알겠다....”

그런데 이상한 건 ‘맞으러 간다’는 아이들이나 그 이야기를 듣는 선생님 모두가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M 선생님은 교단 경력 20년쯤 되는 중견 교사다.

그 선생님은 언제나 수업 시작 2분전에 교실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기다린다. 그러니 아이들은 자칫하면 지각생이 될 수밖에 없고, M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엔 수업시간에 늦으면 수업이 끝난 후 교무실에 가서 ‘맞기로’ 약속을 해 두었다.

중요한 건 이런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고 특히 아이들이 ‘맞는 일’에 대하여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 모두에게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맞으러 가는데요’의 핵심은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 끈끈한 신뢰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바탕으로 ‘무조건적인 복종’의 뜻을 가진 대답을 하고 있고, 선생님은 ‘맞으러 오는’ 아이들에게 진짜 ‘사랑의 매’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 말 한 마디는 걱정거리 많은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그나마 신선한 청량제 같은 느낌을 주는 함축된 표현이다.

교사의 권위가 인정되고 배우려는 학생의 자세가 되어 있는 이런 가운데서 어찌 학부모의 ‘교실 간섭적’인 체벌 논쟁이 있겠는가. 우리의 교육 현실을 걱정하는 소리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른’이란 단어의 제대로 된 의미를 아는 아이들이 별로 없고 ‘선생은 있되 스승은 없다’라는 한탄이 적지 않다.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만 생각하고 남에 대한 배려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그동안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 각 분야 모두가 아이들의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그 어느 누구도 아이들의 도덕적 자산이 증가하고 있다고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교사들의 ‘교육포기’도 곳곳에서 나타난다. 수업시간에 엎어져 자는 아이는 안쓰럽다고 그냥 둔다. 아이들이 별로 학습의욕이 없으니 교재연구는 안 해도 된다. 수능과 관련 없는 소위 허드레(?) 과목이니 대충 해도 문제없다. 아이들의 흡연은 일상화된 것이니 못 본체 한다. 아이들에게 손댔다가는 학부모가 따지고 덤비니 할 필요 없다.

이 같은 사도(師道)의 길을 벗어난 모습들은 물론 ‘극히 일부’ 교단의 모습일 뿐이다.하지만 비록 극히 일부라고는 하나 그대로 둘 수만은 없는 이런 ‘사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건 우선 요즈음 아이들의 ‘행복과다증’에서부터 물질 문명의 발달과는 정반대로 점점 피폐해 가는 사회 곳곳의 정신 문명, 경쟁이라는 생존의 기본원리를 잊게 만들어 버린 평준화, 공부 ‘할‘ 아이나 ‘하지 않을’ 아이를 뒤섞어 놓은 ‘이상한’ 교실, 옆의 친구가 더 좋은 성적을 받을까봐 안달하는 순수하지 못한 아이들의 정서 등등 다 열거할 수 없다.

여기에 교사들 자신의 문제 또한 없지 않다. 아무리 해도 부족할 자기 연찬은 소홀히 한 채 스승으로서의 소명의식 없이 일반 여느 월급쟁이와 똑같이 자기 비하(卑下)를 하는 교직자가 있는 한 사도의 길은 요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일부 학부모들은 내 자식 밖에 모르는 과보호 의식과 일류병에서 좀처럼 헤어나질 못하고 있고, 돈 좀 있고 많이 배웠다고 교사를 ‘우습게’ 여기기도 한다.

그러면 합리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겨야 할 교육 당국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하면 안타깝게도 그렇지도 못한 것 같다. 학교 현장과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들은 일선 학교와 지방교육행정으로 하여금 적지 않은 혼돈과 시행착오를 겪게 하고 있다.

이대로 두기에는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방은 너무 넓다. 교육에는 왕도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지난한 작업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다는 ‘사람 만드는 일’을 아주 쉽고 정겹게 해 나가는 교육현장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맞으러 가는데요”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아이들과 선생님이 있는 곳이었다.

/충북고 행정실장 idish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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