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한 TV에서 방영한 우리의 교육현실과 관련된 내용은 많은 국민들에게 우리의 교육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걱정을 또 갖게 했다. 내용인즉 서울 대치동 주변의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그곳에 살아야 일류대에 진학할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이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곳 학원에 들어가려면 예약과 함께 6개월 뒤에 시험을 거쳐야 입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울로 이사한 한 학부모는 남편 직장의 위치나 통근 형편보다는 아이를 그곳 학교에 보내기 위해 무조건 ㅇㅇ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했다.

아이를 위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느냐는 학부모의 억척스런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를 앞세워 학부모가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다는 혹평도 있다.

일부 잘 나가는 연예인들도 대치동을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대치동이란 곳이 ‘교육특구’일 뿐 아니라 ‘신분상의 특구’가 되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등등의 문제와 관련하여 최근 일부 교육전문가들이나 국가의 돈줄을 쥐고 있는 재경원측이 고교평준화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으나, 교육 주무부처에서는 ‘안될 말’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둘째로 치고 결국 아이들이 또 실험 대상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우리의 ‘일류병’은 이미 어쩔 수 없는 고질병이 되어버렸고 이에 수반된 소위 ‘치맛바람’ 문제는 아직도 그치질 않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 학과도 공부하기 쉬운 학과를 선택한다.

의사가 되어 인술을 베풀겠다는 의사 지망생들도 돈이 안되고 위험 부담이 있는 일부 과(科)를 기피한다고 한다. 고등학교 아이들도 자연계열을 기피한다.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학문에 도전하려는 의지보다는 돈이 우선인 세태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나서서 자연계열 지망 학생을 우대하라는 ‘말씀’까지 하셨을까. 이래서야 어떻게 노벨상을 기대한단 말인가. 이런 세태에 더욱 기름을 붓는 일이 이른바 학부모들의 지나친 학교교육 간여 문제다.

물론 무엇보다도 중요한 자녀의 교육문제에 대해 부모가 무관심할 수야 없겠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고 금도(襟度)가 있어야 한다.

교맹(敎盲)이란 말이 있다. 교맹은 교육에 대하여 잘 모른다는 자각이 없다는 것으로, 교육을 출세와 성공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교육문맹을 일컫는다고 한다. 교사가 교맹이어서는 물론 말도 되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참여가 지나쳐 간섭의 지경까지 이르게 되는 학부모의 교맹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중견 교사가 주석(酒席)에서 푸념한다. 차라리 교문 앞에 ‘학부모 출입금지’라고 써 붙이면 어떨까 하고. 오죽하면 교사의 입에서 그런 정도의 표현까지 나오게 되었을까 하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어떤 퇴직 교장 선생님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학교에 맡기면 교장은 밥을 만들지 결코 죽을 만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간의 신뢰가 부족하다. 학부모와 교사간, 교사와 학부모간에 신뢰가 없다면 학생을 위한 멋진 3중주는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교단에 처음 서는 날의 ‘20대 교사의 각오’는 정말 대단할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뒤의 ‘50대 교사의 포기’ 또한 여간 우려할 일이 아니다.

하긴 요즈음 같이 학교사회 내부조차 분열과 갈등이 없지 않은 그런 상황에서 ‘교육낙원’을 부르짖는 것 자체가 연목구어(緣木求魚)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을 기르자는 일인데 희망을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아직은 20대의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퇴직할 때까지 교단을 지키고 있는 ‘참 선생님’들이 더 많고, 교맹이 아닌 진짜 학교를 도와주고 아껴주는 마음을 가진 학부모도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 프로그램 끝 부분에서 강북에 사는 40대 여자 학부모는 말한다. “강북에 산다해서 불이익은 없다. 자기수준에 맞게 공부시키고 자기수준에 맞게 사는 것이다.

일류대 들어가고 1등을 해야만 아이가 제대로 자란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인간성이 중요한 거지”라고. 사족(蛇足)이 있다. 공부도 잘하고 인성도 좋으면 금상첨화인데 바로 이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 충북고 행정실장 idish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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