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정부정책의 근간으로 여겨졌던 ‘지역균형발전’ 시책에 대해 지역 여론이 심상치 않다. 수없이 되풀이되었던 지역균형발전 공약에 대한 신뢰감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 지역스스로 해결방안을 모색하려는 자구책 논의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격한 발언이 여과 없이 표출되기도 한다.

지난 8월 1일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충북의 전략’ 정책토론회는 그 정점을 보여주었다. 충북도의회와 청주경실련이 공동개최한 점과 각계각층을 망라한 참석자 면면을 고려할 때 지역의 관심 정도를 알 수 있는 행사였다.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 설치 문제에서 촉발되었지만 그간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저변의 의구심과 지방의 위기의식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분명 이유 있는 시위(?)였다.

최근 일련의 수도권 관련 동향, 즉 수도권 공장총량제 완화, ‘비전 2011’ 정책보고서(한국개발연구원)의 수도권 잠재력 확충, 공업배치법 개정을 통해 지식기반산업 집적지구의 수도권 조성 허용,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을 위한 수도권 개발 확대, 구상중인 제3차 수도권정비계획(2002∼2020년)의 수도권 1억평 이상 개발 등등에서 30년 이상 유지되어온 집중 억제시책이 정부에 의해 포기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그런데 실제로 심각한 것은 수도권이 아니라 비수도권이다. 70년대 이후 수도권과밀 억제시책에도 불구하고 인구유입과 경제력 집중이 지속되어 왔으며 오히려 최근에 올수록, 특히 외환위기 이후 지역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결과에서 밝혀진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에 대한 규제완화가 계속 시도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안일한 현실상황 인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수도권이 가지고 있는 정치·경제적 영향력에 의해 국가의 주요 정책이 표류할 만큼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지 못한 까닭이다.

한편으로 개방화·지방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수도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 완화 논리도 일리가 있다. 선진국 대도시들도 규제완화라는 국제적 조류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나라의 돈과 사람을 모두 빨아들이는 수도권 존재를 덮어두고 몇 가지 지원시책에만 의존해 지역균형발전이 달성될 것으로 보는 것은 기대난망이다.

현재는 세계적으로 기업과 산업들의 지리적 밀집(agglomeration) 현상이 뚜렷하다. 정보·지식·기술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공간으로 모든 자원이 집중되면서 그렇지 못한 지역과의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모든 국민경제 활동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것은 여기에 강력한 시장의 힘(market power)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제 해결은 비수도권에 이와 견줄 수 있는 힘

(countervailing power)을 길러주는 것이다. 수도권에 대한 규제는 풀되 비수도권에는 집중적이고 실효성 있는 행·재정적, 금융적 지원방법을 동원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돈과 사람이 모이게 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사적 이익에 치중하는 기업과 국민들에게만 수도권을 벗어나도록 유도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솔선수범 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중앙부처 지방이전의 단계별 실행도 포함된다. 이는 그 동안 실효성 면에서 가장 효과 없는 정책으로 꼽히는 수도권과밀 억제시책을 전면 탈바꿈시키면서 지방의 위기의식을 해소시켜주는 일거양득이 될 수 있다.

왜 지역균형발전인가? 그것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밀화가 극심해지면서 자체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수도권과 과소화로 와해(瓦解) 직전인 비수도권이 동시에 살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해소라는 소극적 접근이 아니라 수도권은 물론 외국의 지역과도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세계적 공간을 곳곳에 만드는 획기적 방법이 강구되어야 할 때다. 지방 붕괴가 아닌 활력의 도미노 현상을 만들어나갈 때 지역균형발전은 이룩될 수 있을 것이다.

/충북개발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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