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는 연말은 분명한 것 같다. 좀 된다고 하는 식당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이곳 저곳에 온통 송년 모임이 한창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모임을 보람찬 한 해를 아쉬움 없이 보내자는 송년회로 부르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망년회라 부르고 있다.
어쩌면 지겹고 힘들었던 한 해를 잊어버리자는 뜻에서 망년회라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언제나 삶을 즐겁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 하루가 지겨운 사람들도 있다.

맹자는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했다.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고, 부모형제 무고하며,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 그것이다

(仰天不愧, 父母俱存 兄弟無故, 得天下英才敎育). 이 가운데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며 보람찬 행복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간다는 것 또한 자신에 대한 엄격한 도덕적 규율로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결국 삶의 의미는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 가지고 사는가만 가지고 논할 게 아니라 얼마나 가치 있게 사느냐 하는 것이 더욱 본질적인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의 행동이 지고지선(至高至善)인 줄 알지만 그러나 그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나 몰가치적인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보통 사람이 자기중심의 아집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모든 행동과 말들이 모두 국민의 뜻이라고 하고, 교수나 교사들은 모두가 학생을 위한다고 말한다.

행정가는 입만 열면 국가 사회발전을 앞세우고, 종교계 인사들은
모두가 성현(聖賢)의 뜻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현실은 그들의 말 대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 ‘꾼’들의 말을 믿는 국민들은 이제 그들의 주변 측근들 이외엔 별로 없는 듯하다. 옛날처럼 교수님과 선생님을 믿고 따르는 학생들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것 같고, 성인(聖人)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도 모두가 진실을 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 같은 작금(昨今)의 일들을 깊이 들여다보면 모두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른바 ‘밥그릇 챙기기’ 아닌 게 별로 없으니 바로 그게 탈이다.

인도의 지도자 간디가 지적한 나라를 망하게 하는 7가지 조건이 있다. 원칙없는 정치, 노동없는 부, 도덕없는 상업, 희생없는 신앙, 양심없는 쾌락, 인간없는 과학, 마지막으로 인격없는 교육이 그것이다.

이 모두가 마치 ‘우리’를 두고 하는 말 같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자격지심(自激之心)일까?

신사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한 편에선 월드컵 16강 진출을 두고 많은 국민이 열을 올리고 있고, 다른 한 편에선 ‘국민을 위해’ 뭐가 되겠다고 치고 받고 난리들이다. 또 다른 한 쪽에선 자기가 주민을 위해 가장 열심히 일하는 선량이라면서 공무원들을 향해 호통(?)치며 위엄을 보이고 있는가 하면, 어떤 교단에서는 이미 위엄을 상실한 채 한낱 월급쟁이로 전락해 버린 교직자가 자신이 현실에 가장 적합한 선생님이 되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서글픈 모습도 보인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지역적으로 갈라져 있고, 정서적으로도 구심점 없이 흔들리며 목표 없이 흘러가는 망망대해 위의 조각배 같다고 한다면 지나친 자학(自虐)이며 패배주의라고 비난할 것인가.

과거엔 비록 박봉이었고, 막걸리 한 사발로 허기를 달랬을 망정 오늘과 같은 정신적 황폐는 없었다는 공직생활 30년 넘은 한 공무원의 푸념을 그대로 지나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세상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리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는 데 있다. ‘네 탓이오’만 외칠 게 아니라 ‘내 탓이오’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겸손함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天知地知 汝知我知)”라고 했다. 잠시 남을 속일 수는 있으되 영원히 자신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세상을 사는 삶의 가치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무엇 때문에, 무엇에 얽매여 그 훌륭한 가치를 잊고 또 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고 있는가. 신사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한 해를 보내면서 나 자신 얼마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 왔는지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볼 때다. 삶을 회피
하는 망년회보다는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송년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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