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에 대한 재현의 환상은 인간 본질에 대한 물음에서 의문을 제기해 온다. 어떤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대상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결국 창작 주체자인 작가 자신의 주관에 대한 물음으로 피드백 되어 온다.
대상에 대한 재현이 아닌 그 대상을 보고 느낀 작가 자신의 주관적 표현에 대한 질문이다. 작가가 어떤 대상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2차원적 평면에 표현하는 과정에서 가장 원초적인 것은 있는 그대로 그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주체가 점점 싹트고 신 중심 사고에서 인간 주체의 존재에 대한 물음이 전개되면서 양상은 바뀌게 된다.

봉건적 사회에서 점점 자유로운 개방 체제로 사회는 전개된다. 작가도 교회의 후원에서 점점 독립되어 하나의 독립적 주체로 자기의 작품이 자본주의에 적응하기 위해 상품화되는 것이다.

작가의 이름이 양명이 되어야 하고 작품이 상품성을 획득하면서 작가의 의식은 일상적 사회의 생활과 실상에 대한 재현의식보다는 자기만의 주체적 표현중심으로 변하게 된다. 차별적 상품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말이다.

재현적 환상은 인상파 이후에는 그 위풍을 잃게 된다. 이제 작품은 더 이상 일점 투시의 원근에 의존하지 않고 화면에 깊숙이 빠져들 필요도 없게된다.

작가는 자기 본질과 어떤 대상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환원적 질문에 매달리고 그 본질에 대한 탐구에 시간을 보낸다. 어떤 대상의 실제적 이미지의 파괴는 결국 사회 의식의 변천과 작가 의식의 변화에 의한 것이다.

작가는 원근법에 의한 실제와의 괴리를 이용한 그림을 그리며 관객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관객은 그 그림을 보면서 변화된 시대의식과 영합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본질에 대한 탐구는 모더니티의 삶이 제대로 여물 때까지 그 숨을 이어간다. 이런 거칠지만 지속적이고 내재적인 노력은 결국 본질의 획득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그림으로 말하자면 평면성 획득이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 이후 이어진 재현에 대한 운명적 갈망은 평면성의 획득에서 그 운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인상파 이후 더욱더 가속화된 평면성에 대한 갈망은 사회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그림에서도 빠르게 나타난다. 수 백년에 이어진 재현의 신화가 약 백년에 걸쳐 훨씬 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이런 모더니티 획득의 복잡한 양상은 결국 평면성 획득을 위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인상파이후 해체된 재현의 실제는 점점 더 환영이 아닌 실제로 접근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실제는 대상에 대한 실제가 아닌 인간 주체에 대한 실제에 가까운 말이다. 대상에 대한 자연적 경외감과 두려움은 인간이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었고 그것에 대한 극복 자체가 결국 인간의 주체성 회복을 위한 모더니티 획득의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모더니티의 획득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 내면의 주체에 대한 탐구는 그림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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