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무리 입시 위주 교육의 폐해를 들고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개혁도 주장하고 변화도 추구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왕도(王道)가 없는 교육정책의 희생양으로 올해도 그저 ‘남들이 다 가니까 가야 하는’ 대학입학을 위한 수능을 치러야 했다.
이제 이 ‘수능 고개’를 넘은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또 그 뒷바라지에 온 가족이 매달려야 했던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긴장이 풀리고 이완된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그 동안 고생을 했으니 이젠 시간도 주고 놀게도 하자며 선생님도 부모님도 모두가 너그러워지고 아이들은 쌓였던 교과서며 참고서들을 제쳐두고 거리로, PC방으로 쏟아져 나갈 것이다.
결코 무리가 아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공부하던 아이를 보고 안쓰럽지 않았던 부모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요즈음 같이 하루 하루가 절실한 시대엔 ‘수능 이후’가 얼마나 중요하며, 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야 한다.
시험이 끝난 아이들은 학교 생활에 대한 미련이 크게 떨어지게 마련이다. 해방감에 느슨해지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좌절감 속에서 일탈행위에 빠져드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다. 등교 의욕을 잃는 아이들도 점차 늘어날 것이며 진로가 명확하지 못한 학생들은 자포자기에 빠질 수도 있다.
특히 궤도를 벗어난 이런 아이들의 정신 자세를 틈탄 어른들의 무절제한 상혼(商魂)은 아이들을 더욱 유혹할 게 틀림없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앞으로 겨울방학까지 남은 한달 반 정도의 기간은 학생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일생을 좌우하게 될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적성’에 맞는 진로 선택이 아니라 ‘적’당히 ‘성’적에 맞추는 진로선택이라면 이보다 더 위험한 선택은 없다. 순간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한다는 평범한 말의 의미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기간에는 또 학교와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가 연계된 지도가 더욱 필요하다. 더불어 시험 준비로 할 수 없었던 다양한 활동들을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 못했던 일들이 어디 한 두 가지인가.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으나 우선 새로운 외국어에 좀더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고 여학생의 경우는 미용체조 같은데도 관심을 갖도록 해 볼만 하다.
전통 음악, 서예, 연극, 기악, 수영, 볼링 등등 아이들에겐 즐겁고 신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배낭여행은 얼마나 멋진 추억이 될 것인가.
남학생이건 여학생이건 자매 부대에 입대한다든지 국토순례 행사를 갖는다든지 하여 극기훈련의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또 사회 저명 인사나 선배 초청 강연은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인생의 등대로 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 동안 소홀히 했던 현장 체험학습의 일환으로 모의 지방의회나 모의국회도 열어봄으로써 머지 않아 갖게 될 참여하는 주권의식도 키울 수 있다.
누구나 취미라고 하면 독서, 독서 하지만 그게 그리 쉽지가 않은 것이다. 그리스·로마의 신화나 명심보감, 삼국지 같은 것들을 마음놓고 여유있게 읽을 수 있는 기회로는 지금보다 더 좋은 시기가 없다.
수능이 끝난 지금 마치 인생에서 대학이 전부인 것 같은 세상에 태어난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들을 유혹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떼돈을 버는 것인가. 내 아이가 아니니까 그들이 어디로 가든 상관하지 않는 것인가.
어차피 인생은 경쟁일 수밖에 없다. 1등도 있고 100등도 있다. 우리가 걸핏하면 잊는 건 바로 아이들의 능력이 모두가 똑같지 않고 다르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만큼을 소중히 생각하고 이를 인정하며 새롭게 적응하도록 안내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능은 결코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인생에서 실패라는 경험은 어쩌면 꼭 필요한 과정일 수도 있다. 수험생 모두의 노고에 대한 격려는 물론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따뜻한 위로의 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수능은 끝났다. 수능을 마친 아이들에게 그건 끝이 아니라 인생의 새로운 장이 시작되었다는 걸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
/ 충청북도교육청사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