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가 방향을 잃고 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우며 선진국 진입의 상징인 OECD에 가입하는 등 발전하는 분위기는 주춤한 상태이다. 일부에서는 민주화가 혼란만 가지고 왔다고 말하며 권위주의 시절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민주화는 역사의 필연이다. 권위주의는 더 이상 통용되기 힘들다. 지구촌 시대에 민주화를 이루지 않고는 국제사회에서 행세할 수도 없으며, 수많은 간섭을 받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국민들의 자세를 탓하기도 한다. 민주화속에서 이전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하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힌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이만큼이라도 발전한 것은 국민들이 소처럼 우직하게만 일한 덕이다. 이들이 이제 삶의 질을 중히 여겨 자신의 이해관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사회는 그 동안 경제성장, 물질생산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효용성을 높이는 데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회 각 분야의 실무자, 일꾼을 기르는데 관심을 쏟으면서도 이들을 통합, 지휘, 조정하는 지도자 양성에 소홀했던 탓이다.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다수는 지나간 관행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위압적으로 군림하려 든다. 권위주의를 벗어던졌다는 지도자들도 길게 넓게 보는 눈을 가지지 못하고 편협한 이해관계에 집착하고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지도자로 행세하던 인사가 도덕적 일탈행위나 범법행태로 인해 지탄과 사법적 조치 등을 받음으로써 그간의 위상을 하루 아침에 허물어 뜨리는 예도 없지 않았다.

이들이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사회가 혼란스럽다. 진정한 지도자들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지도자 하면 먼저 떠오르는 덕목은 통솔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기법, 사람들을 지휘하고 이끄는 기법들을 익혀야 한다. 그러나 지도자의 덕목을 단순히 기법 차원으로 좁혀서는 안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고 품으며, 이들을 이끌고 올바른 방향을 찾아 나아가려는 품성과 안목이다. 지도자는 좁게는 한 집단 넓게는 한 시대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내리는 결단, 미래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 그리고 구성원들을 이끌어 갈수 있는 통솔력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구성원들이 노력하고 관심을 가지며 일을 하여도 지도자가 올바른 생각과 가치관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그 단체의 발전은 기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의 덕목은 단기간에 길러지지 않는다. 개인의 꾸준한 노력과 사회의 뛰어난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대학이 반성해야 할 바가 크다.

대학은 한 사회의 최고 교육기관이다. 그 동안 대학은 전문인을 양성하는데에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교양인, 지도자를 기르는데 소홀했다. 이제부터라도 대학은 지도자를 기르는데 관심을 돌려야 한다. 학생들에게 당장 이용할 수 있는 기술과 전공 지식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고전, 예술들도 익히도록 해야한다.

한 사회의 리더로서 역할하기 위한 다양한 덕목들을 교육하여야 할 것이다. 학생들이 인간에 대한 이해, 사회에 대한 혜안, 삶에 대한 영감을 쌓아 나가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지금 비록 우리 사회가 혼란스럽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확신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혼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지역사회의 뜨거운 지지와 사랑속에서 성장한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명심했으면 한다.

/ 충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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