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6년 ‘2000년에는 비축쌀의 재고가 바닥날 것’이라던 우리정부의 예측이 빗나가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할판인데도 풍년이 들어 오히려 걱정을 하게 됐으니 참으로 기가 차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가축용사료 원료를 포함 28%에 지나지 않지만 쌀 자급률은 95%에 이르고 있다. 쌀수입도 1%에서 2004년에는 4%로 늘어나게 돼있으므로 우리는 잡곡 등 식량을 거의 외국에서 수입해다 먹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풍년으로 고민하는 것은 어찌보면 즐거운 비명이어야 하는데 그렇지못해 여간 안타깝지가 않다.

이달 23일부텨 추곡수매가 시작됐지만 수매가가 낮다고 농민들은 시큰둥하다. 40Kg 1부대 1등급이 6만440원, 2등은 5만7760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4%정도 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22일 옥천지역 농민300여명은 쌀값 사수를 위한 농민대회를 열고 보상대책을 요구했다. 그리고 농협과 미곡종합처리장에 수매부담을 떠넘겨서는 안된다며 농민들의 희망량을 1등급가격으로 전량 수매하라고 촉구했다.

농협충북도지부 노동조합도 농협시가수매 400백만섬의 수매가를 최소 2등급이상의 수매가는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앞서 9월17일 논산과 대전에서, 15일에는 전주와 창원에서 쌀값보장을 위한 농민대회가 있었다.

논산의 한 농민은 수확을 눈앞에 둔 벼 800여평을 갈아 엎었다. 이렇게 농정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고있지만 정부는 묘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농협과 미곡종합처리장이 정부약정수매가로 매입한 뒤 시가와의 차액을 정부가 보전하라는 요구도 세계무역기구 규정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있다.

소득이 줄어들고 있는 농민들이나 지원을 해줄 수 없는 정부나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궁여지책으로 지난 24일 충북도는 민·관협의기구로 ‘쌀산업 안정대책범도민협의회’를 발족시켰으나 과연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 하겠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농촌은 97년이후 농가소득은 줄어들고 빚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영농자금과 가계성자금의 차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물벼값은 40Kg 1부대에 4만8천~5만3천원으로 지난해보다 10%나 떨어졌다. 지난 30년간 쌀생산량은 30%정도 증산됐으나 1인당 소비량은 90Kg로 30%나 줄었으니 쌀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쌀만큼은 정부가 국가안보·식량안보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쌀농사의 기반이 무너지면다시 회복시키기는 참으로 어렵다.

아랍국가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이스라엘이 정부, 학자, 농민이 3위일체가 돼 투자 연구 개발을 담당, 식량을 자급자족하고도 수출하는 것이나 미·소냉전시대 미국이 소련에 사용한 마지막 카드가 식량금수였던 점을 상기하면 식량이야말로 국가안보의 가장 기본 요소임에 틀림없다.

우리도 96년에 중국산 쌀44만섬을 수입했고 그해 국제밀값이 크게 올라 국내업계와 국민들이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식량이 남아서 걱정하는 것은 그래도 사치에 가깝다. 그런점에서 기초식량인 쌀의 안정적 공급기반을 확보하는것이야 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쌀소비를 늘려나가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밀가루 라면 국수 등에 쌀이 밀리고 있지만 우리쌀에는 항암효과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96년 한국식품개발연구원의 전향숙박사팀이 우리쌀의 우수성을 규명하기 위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쌀이 90%이상의 높은 돌연변이 억제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바 있다. 말 그대로 우리 것이 우리 몸에 좋음을 증명한 것이다. 그런 만큼 소비촉진과함께 대체식품개발도 시도해 볼 만하다.

다음으로 전업농을 육성해야 한다. 부녀자와 노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지금의 농촌으로서는 쌀의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전업농을 통한 생산비절감을 유도하고 정부도 식량증산을 농정의 제일과제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자면 식량문제를 국가산업정책의 문제로 다뤄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기상이변으로 흉년이 크게들면 재고는 1~2년만에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다. 흉년이 들어 수입하고자 하면 국제시세가 지금과 같을 수는 없다. 그리고 또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증산은 멈출 수 없다. 통일이 지연되면 북한주민을 도와주더라도 쌀은 남아 돌아야 한다.

이원종 충북지사가 22일 대통령 국무총리 행정자치부 농림부에 정부차원의 조속한 보완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건의한 것이 받아들여져 농민들의 주름살이 펴지길 기대한다. 96년 11월 세계식량정상회의 슬로건이‘모두를 위한 식량’이었음을 정부도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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