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가족, 뉴질랜드 가다
발목 다친 아내의 쾌유를 기원하다 <11>

북섬 최고봉 루아페후(Mt Ruapehu 2천797m)에 와카파파 스키 리조트(Whakapapa Ski Resort)가 있다. 와카파파 리조트 슬로프는 튀어나온 화산석들을 굳이 없애지 않고 자연의 상태 그대로 만들어졌다. 스키어들은 위험요소가 있으면 피하며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자유스럽게 활강한다. 위험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평탄하게 만드는 슬로프와는 대비 된다. 우리 부모들 또한 자녀들이 잘되길 바라는 욕심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다칠 수 있는 모험과 도전의 길 보다는 남이 다져 놓은 반듯하고 안전한 길로 따라가기를 바래 창조성을 살려내지 못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우리는 사이트씨잉(Sightseeing) 가족권을 구입하여 2천m의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이곳에서 스키어들은 스텐드업 리프트로 더 올라가고 루아페후를 오르려는 사람은 아이젠과 픽켈을 준비해 올라가야한다. 정상에는 분화구가 있는데 겨울에는 눈으로 덮여있고 여름에는 호수가 된다.

남풍이 빰을 자극한다. 통가리로(Tongariro)의 통가(Tonga)는 ‘남풍’을 뜻하며 리로(riro)는 ‘옮기다’라는 의미를 지닌 마오리 언어다. ‘너무 추워 위험에 빠진 오빠의 마음이 남풍을 타고 고향에 있는 여동생에게 전해져 불씨를 가져와 살았다’는 마오리의 전설이 생각난다.

바람에 실려 있는 주변 전망이 황홀해 추위조차 잊게 된다. 두꺼운 구름위로 솟아난 나우르호에(Mt Ngauruhoe 2천287m)와 통가리로(Mt Tongariro 1천968m)가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만들어냈다. 에머럴드빛 하늘은 태양을 맘껏 품으며 지구 끝까지 탁 트인 공간을 제공해 줬다.

스키어들은 슬로프를 질주하며 스릴을 만끽했고 루아페후 정상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식량을 보충하며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윤지는 “오늘 여기서 스키타고 가면 안돼요?”라며 스키어를 부럽게 바라본다. 나 또한 남은 일정을 모두 미루고 이곳에서 하루를 더 보내며 스키도 타고 루아페후 정상도 오르고 싶다. 

스키장을 내려와 스코틀 알파인 리조트(Skotl Alpine Resort) 입구로 왔다. 이곳은 통가리로 노던 서킷(Tongariro Northern Circuit)의 4군데 시작점 중 하나이다. 우리는 왕복 2시간이 소요되는 타라나키폭포까지의 트레킹을 선택했다. 노던 서킷은 4일이 소요된다.

동계에는 픽켈과 크램폰이 필수이며 강한 바람과 경사가 심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필요지점에 무인 산장이 설치돼 어드벤쳐 트렉커들에겐 최상의 코스로 꼽힌다.

숲속의 공기를 폐부 깊숙이 밀어 넣고 드넓은 평원에서 가슴을 펼쳐 본다. 흰 설산을 바라보며 속세의 찌꺼기를 떨치고 굽이져 이어지는 길에 낭만을 느낀다.

형빈이는 계곡의 얼음물에 손도 담가보며 신이 났다. 주위의 풍광에 도취된 아내가 한껏 포즈를 취하며 사진의 모델을 하다 갑자기 균형을 잃으며 앞으로 꼬꾸라진다. 외마디 비명이 들리고 왼쪽 발목의 통증을 호소한다. 땅바닥에 누워 거의 울 지경이다. 당황한 윤지와 형빈이가 동시에 “괜찮아요?”를 외친다. 형빈이가 잽싸게 계곡으로 달려가 얼음을 가지고 와 냉찜질을 한다. 윤지는 엄마를 안정시키며 다리를 주무른다. 당황했던 순간이 가라앉자 아내는 눈가의 촉촉함을 닦아내고 발목을 점검한다. 걸을 수 있겠다며 일어섰지만 뒤뚱뒤뚱 절룩거린다. 심하게 다치지 않았기를….

타라나키 폭포에 도착을 했다. 약 40m의 물기둥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바위에 부딪힌 물기둥은 물보라와 함께 무지개를 선사한다. 가까이 다가가니 물보라가 내 몸을 감싼다. 물기둥은 산 전체에 포효하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와있는 7명의 청년들은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내려놓고 다리쉼을 하고 있다. 노던 서킷을 마치고 휴식하는 중이란다.

형빈은 좀 더 크면 자신도 꼭 해보고 싶단다. 바닥이 훤히 보이도록 맑은 물을 한 모금 마시니 마치 신선이 부럽지 않다. 아름다운 대자연의 풍광에 취해 불편한 아내의 다리도 잊은 채 걸은 우리는 3시간 넘게 소요했지만 타라나키 트레킹에 대만족했다.

노던서킷을 하던 청년들이 우리의 일정을 묻더니 그 중 한명을 트랑기(Turangi)까지 태워줄 수 있느냐고 한다. 우리 캠퍼밴에 처음으로 이방인이 올랐다.

그는 독일인이며 이름은 플로리안(Florian)이고 나이는 24살이었다. 플로리안은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지금까지 25개국을 여행한 스포츠맨으로 특히 스노우보드를 좋아한다고 한다. 요즘은 미래와 직업에 대한 고민을 하며 여행 중이고 한국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으며 기회 되면 방문하고 싶단다.

거대한 호수가 시원스레 나타난다. 타우포 호수다. 아내는 바다라 우긴다. 육지 중간으로 들어와 바다가 아니라 호수라고 설명하니 엄청난 규모에 감탄한다. 호수 주변의 오리들이 석양빛 속으로 비상을 한다. 

GPS에 검색도 되지 않는 디브렛 핫 스프링(Debretts Hot Springs)을 물어물어 어둠속을 뚫고 찾아갔다. 디브렛 핫 스프링은 노천 미네랄 온천으로 유황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니 피로가 가신다. 윤지와 형빈이도 물장난을 하며 피로를 온천물에 담아낸다. 밤하늘의 달은 초승달에서 어느새 보름달로 바뀌어 간다. 뉴질랜드는 남반구에 위치해 있어 여름에는 해가 길고 겨울에는 해가 짧다. 겨울에는 5시30분만되면 어두워지니 어둡기 전에 일정을 마치려면 많이 서둘러야한다.

타우포 호숫가로 이동하여 다른 캠퍼밴과 나란히 자리했다. 그곳 표지판에는 캠퍼밴 그림과 함께 이렇게 적혀 있다. ‘MAX 2 NIGHTS 5PM-10PM, INFRINGEMENT FEES APPLY $200.00(밤에 이틀이상 주차해 놓으면 벌금 200$)’

잠자리에 든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혼자 호숫가를 산책한다. 아직도 몇 군데 가게의 불빛은 켜있고 가끔씩 지나는 관광객들이 보인다.

잔잔한 호수는 밤하늘을 머금고 달빛과 별빛은 호수 속에 잠긴다.

글·사진 박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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