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가 우리의 끈질긴 역사교과서 수정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음에 따라 양국관계가 긴장관계로 치닫고 있다. 이는 일본이 35개항목 중 2곳만 수정하겠다고 역사교과서 수정검토 결과를 우리측에 통보해오자 우리정부가 강력대응으로 나섰기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런 결과는 일본의 우경화경향도 경향이지만 역사교과서에 대한 우리측의 대응이 너무 안일 한데서 비롯된 것임을 간과해선 안된다.

2월중순 일본의 역사학자 교육자 등 지식인들 조차 역사를 왜곡하는 교과서의 검정통과를 반대하고 나섰고 하순엔 우리의 여야의원 100명이 시정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음에도 정부는 별 대응을 하지 않았다. 국회가 한일의원연맹 활동중단, 일대중문화개방 일정전면재검토, 천황호칭철회, 청소년교류 재검토 등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정부는 외교통상부 대변인성명에 이어 외교부장관이 주일 일본대사를 불러 유감을 표명하는 데 그쳤다. 관계기관대책회의에서도 외교마찰을 우려해서인지 ‘대책이 없다’든지 ‘기다려보자’는 식으로 넘어갔다. 외교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관리들의 처신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일본은 1980년 교과서파동이후 ‘외교관계서술은 국제이해와 국제협조의 견지에서 배려한다’는 입장을 취한 바 있다. 이는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겠다는 다짐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어 1993년 일 관방장관은 담화를 통해 ‘일본정부 스스로 군대위안부와 관련한 일본군의 책임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세계2차대전종전 50주년인 1995년에는 무라야마 토미이치 전총리는 담화에서 ‘식민지배의 침략으로 아시아국가에 입힌 막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통렬히 반성한다’면서 ‘과거의 잘못을 두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이들에게 전할 것’임을 천명했다. 이런 반성의 토대 위에서 98년 김대중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는 ‘한국민에게 입힌 손해와 고통에 대하여 마음으로부터 사죄하면서 젊은세대의 역사의식을 심화하기위해 노력키로 한다’는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때 문화개방약속이 이뤄졌다. 그런데도 일본은 딴전을 피우고 있다.

문부과학상의 역사인식은 검정대상이 아니라는 억지 주장이나 자민당총재후보에 나선 4명이 한결같이 검정을 통과 한 만큼 문제될 게 없다고 한 것이 그 예라할 수 있다. 이러니 2개월간의 검토작업후 수정불가라는 결론을 내린 것은 정해진 수순같다. 우리정부도 7일 역사교과서 왜곡대책반 긴급회의를 갖고 문화개방연기, 일본의 안전보장회의 상임이사국진출반대외에 야마사키 다쿠 자민당간사장 등 일본연립 3당 간사장의 김대통령 예방을 거부키로 했다. 9일에는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과 시정을 외면하는 일본의 부도덕성을 세계에 집중 환기키로 했다고 한다.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에 손상을 주고 8월말 열릴 세계인종차별철폐회의 등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회의에서 문제삼으며 오는 25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 안보 포럼에서 한일외무장관회담 및 다나카일외상의 방한초청 거부도 검토키로 했다고 한다. 시정기간을 겨우 한 달 남겨놓고 강수를 둘 수밖에 없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움을 지울 수가 없다. 일본의 속성을 잘 아는 외교관들도 많을텐데 여론이 들끓을 때는 가만있다가 이제와서 뒷북치는 것이 우리의 외교력인가 싶어 답답하기까지 하다.

개인이나 국가나 당차지 못하거나 대처능력이 모자라면 얕잡히기 마련이다. 연일 말싸움만하는 우리 정계가 그렇고 옷로비사건, 한빛은행 불법대출, 언론사 세무조사, 의약분업후유증 등 부끄러운 게 한두가지가 아니니 무시하고 대하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정부입장에서 보면 곤혹스럽겠지만 역사교과서 시정불가는 자업자득이라 해도 할말이 없게 됐다. 미온적인 대처가 이런 결과로 나타났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섬나라 일본은 ‘과거 잘못을 후손들에게 알리고 기회있을 때마다 사죄하는 독일’과는 달라도 너무다른 나라다. 지금 우리의 대처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한일 양국이 우호관계를 깨지 않고 교과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결자해지차원에서 일본의 자체시정 밖에 없다. 양국의 우호관계를 깨가며 거짓역사를 청소년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일본의 자유다. 그러나 그런 교만은 언젠가 파멸로 이어진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강하고 당차야 일본의 오만과 교만을 고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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