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월드컵에서 당초 16강을 목표로 했던 한국축구는 이제 8강 진출, 4강도전으로 목표를 훨씬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축구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얻어냈다. ‘대한민국’이 무엇인지, 스포츠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스포츠가 주는 인간에의 교훈이다. 스포츠는 규칙을 가지고 하는 인간의 육체적 활동이다. 그러므로 스포츠는 규칙 안에서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그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것이다.

어떤 능력도 규칙 밖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 스포츠 가운데서 가장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것은 권투와 축구라 생각된다. 이 점이 인간을 매료시킨다. 인간은 ‘타고난 공격성’을 지니고 있다. 이 공격 본능은, 탈선하는 경우에는 파괴와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고 로렌츠는 말한다. 권투는 손으로 인간을 때리는 운동이고, 축구는 발로 공을 차는 스포츠다.

그리고 다같이 인간의 육체를 거의 다 보이게 함으로써 인간을 매료시킨다. 건강하고, 힘에 가득찬 육체를 보는 것은, 인간의 본성의 즐거움을 확인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문화에 의하여 왜소화되어가는 인간 자신의 육체적 무력을 만족시켜 주는데, 부족함이 없다.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즐거워하고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억압과 불행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한다.

현대인의 가장 특징적인 현상인 소시민적 실존과 스트레스는 인간을 괴롭히고 있다. 그런데 스포츠가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스포츠는 집단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민족이나 국가의 사랑이나 애국심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스포츠는 한 국가의 힘과 애국이라는 이념의 다른 형태라 해도 좋은 것이다. 국가 간의 스포츠가 과학 못지않게 장려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스포츠는 이제 경제력이나 군사력과 같은 국력이다.

세계각국은 우리 나라가 4강은 물론, 준결승, 그리고 결승에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 내다 보고 있다.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 축구가 이렇게 발전한 것은, 네덜란드 출신의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과 정신의 결과라 생각된다. 히딩크 감독의 우리 나라 축구 발전에 대한 그의 뛰어난 지도력과 전술이 없었더라면, 월드컵 성과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의리와, ‘16강 약속’을 지키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낸 것이다. 그는 그의 약속을 약속 이상으로 지켰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위대한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국민들도 한결같이 월드컵 승리를 위하여 힘이 되었다. ‘붉은 악마’,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거리 응원’이 ‘월드컵 신화’를 일군 키워드다. ‘붉은 악마’는 인터넷을 통한 인간사회의 개인주의적 속성을, 새로운 인간사회의 결집형태로 바꾼 일등공신이다.

그리고 인터넷의 개인주의와 역기능을 국가의 정서적인 순기능으로 환원함으로써, 젊은이들의 자발적인 열정이 ‘대한민국’을 ‘하나’로 만들었으며, 국민축제로 승화시켰다. 우리 국민들은 서로 일체가 되었으며,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행복하였다. 인간의 염원을 놀이문화로 표출시킨 ‘거리 응원’은 한국의 에너지와 성숙한 시민의식을 전세계에 알린 문화였다.

이탈리아 전에서, 선취골을 빼앗기고도 승리를 거둔 한국 선수들의 투혼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전쟁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 선수들의 집념과 승리에의 열망, 그리고 히딩크 감독의 전술과 용병술의 통합적 총체라 할 수 있다. 우리 나라가 이렇게 ‘하나’가 되어 행복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러나 모든 사물과 같이 월드컵도 영원하지는 않다. 월드컵 후의 ‘대한민국’에는, 월드컵의 열기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분출된 국민의 에너지를 동력화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업그레이드시켜 외교적, 경제적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한다. 월드컵 후의 ‘정신적 공황’을 완화시키는 사업이나, 축제, 혹은 국민적 행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정치에 실망한 국민을 위해서, 정치가는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를 반성해야 한다. 위정자들은 민의를 정확히 파악하고, 부정과 부패, 그리고 ‘정치가 없는’ 이 나라를 정의롭고 행복한 나라로 이끌어야 한다. 국민이 정치에 실망할 때, 국민은 정치를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공격은 언제나 실망을 일으키는 자를 향하게 된다”고 플레히트하임은 말하였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이 자신을 변경할 수 있고, 변경하려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충북대교수·이학박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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