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가족, 뉴질랜드 가다

날씨가 변화무쌍하듯 부부의 삶도 맑음과 흐림의 반복이다. 작은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또 치유를 한다. ‘이 우유 어떻게 할 거야!’란 말이 화근이 되어 불편하고 힘든 밤을 보냈다. 아이들도 불편한지 눈치를 슬슬 본다. 즐겁던 가족 여행이 위기를 맞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준비하고 미소로 가족들을 깨웠다. 아직도 뾰로통한 아내와 눈치 보는 아이들에게 최대한의 서비스를 했다. 홀리데이 파크 아래에 있는 마타코헤 해변으로 향했다. 갯벌로 이루어진 해변에는 돌출된 돌덩이에 붙은 작은 석굴들이 지천에 깔려있다. 석굴 하나를 깨서 입에 넣어본다. 맛이 꽤나 좋다. 여기저기 조개껍데기들이 즐비하게 널려져 있는 것이 우리네 바닷가와 비슷한 풍경이다.

그 가장자리 큰 나무위에 어릴 적 꿈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작은 놀이터가 있다. 나무기둥에 만들어 놓은 계단을 오르면 나뭇잎을 지붕삼은 원두막이다. 말괄량이 삐삐가 친구들과 놀던 원두막에는 못 미치나 제법 운치가 있다. 윤지는 여자라 그런지 무서워하는데 형빈이는 한번 올라가 보자 한다. 아침이라 아직 습기가 남아있어 조심조심 올라간다. 아내는 ‘형빈이가 미끄러질 줄 모르니 따라 올라가라’ 한다. 야호소리를 같이 외쳐본다. 아들이 즐거워하며 얼굴이 환해지니 아내의 얼굴도 함께 환해진다.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 본 나무 위의 작은 원두막 덕에 흐렸던 가족의 분위기는 반전되어 다시 즐거운 가족여행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북섬의 북부지역에서 중부지역으로 이동을 하는 날이라 1번 도로를 따라 오클랜드를 통과한다. 이 도로에는 툴 로드(Tool Load)가 있는데 이곳을 통과하려면 도로 한편에 주차를 한 후 무인지급기를 이용한 통행료를 내야 한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몇 번의 실수를 거친 후에야 4.4$을 지급하고 다시 출발하였다. 승용차와 모터싸이클은 2,20$이 통행료이다. 이곳은 그냥 지나치기 쉽기 때문에 3일간 통행료 납부 기간의 말미를 주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행정세까지 합해 몇 배를 내어야 한다.

물론 오레와(Orewa)비치쪽으로 회전하여 가면 시간은 더 많이 걸리지만 통행료는 없다.

오클랜드에 진입하여 하버 브릿지 (Harbour bridge)를 넘는다.

하버 브릿지는 오클랜드 시내와 북부지역을 이어주는 1,020m의 둥근 아치형의 연륙교로 6년간의 공사를 거쳐 1959년에 개통되었다.

처음 건설 당시에는 보행자 도로가 만들어지지 않았으나 추가로 양쪽면을 덧대어 개축하여 중간까지 걸어 갈수 있다. 하버 브릿지 아래를 바라보니 요트가 즐비하다. 일인당 요트 보유대수가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멀리 스카이빌딩도 보인다.

시선을 돌려 주유계기판을 바라보니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음이 불안하다. 차는 배고프다 신호를 보내는데 휴게소는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마누레와(Manurewa)로 빠져나와 기름을 가득 채우고 다시 고속도로에 접어드니 바로 휴게소가 나온다. 조금만 더 직진 했더라면 바로 만나는 것을 정보가 부족하니 육신만 힘들다. 아이들이 배고프다 성화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고속도로 휴게소를 지나쳤다. 이번에는 포케노(Pokeno)로 나왔다.

허기진 배를 컵라면과 90마일 비치에서 잡은 조개를 끓여 해결하였다. 길 건너편에 뉴질랜드의 대표적 아이스크림 브랜드인 팁탑(Tip Top)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인다.

특이한 것은 같은 팁탑 아이스크림을 파는 체인점이 나란히 붙어있다는 거다. ‘Johnson Takeaways’와 ‘Pokeno Takeaways’이다. 가게 안팎에는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사람들로 붐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이어서 2스쿱을 주문했는데 현지인들은 보통 4스쿱씩 쌓아올린 것을 보고 윤지와 형빈이는 고개를 흔든다. 아이스크림을 받아든 아이들은 언제 배가 고파 짜증냈냐는 듯 해 맑은 모습이다. 와이토(Waito)에 접어들자 무지개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둥굴게 반원형을 만들고 보랏빛 옆으로 연한 노란 빛까지 만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일곱 빛깔보다 많아 보였다.

완벽한 반원형 무지개는 어질 적 보았던 희미한 기억만 있을 뿐 어른이 되어서는 본 기억조차 없다. 연실 셔터를 누르지만 무지개가 너무 커서 하나의 앵글 속으로 들어가질 않는다.

연속 촬영도 하고, 아이들을 세워 놓고 기념 촬영도 해본다. 그러면서 멧돼지를 사냥하여 실은 짚을 보았다. 죽어서 꽁꽁 묶인 멧돼지지만 무지개 아래 무엇이 즐거운지 해죽 웃는듯하다.

이곳에 와서 벌써 네 번째의 무지개지만 이번이 가장 선명했다. 윤지와 형빈이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일곱 빛깔 무지개가 신기한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좋아라 한다. 무지개는 우리 일정에도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오토로항아(Otorohanga)를 지난다. 왠지 이름이 낯설지 않고 시내도 크고 정갈해 보였다. 잠깐 쉬어갈까 하다 얼마 남지 않은 와이토모로 달렸다. 아뿔사! 이곳을 지나며 키위 하우스를 들렸다 가라는 이야기를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오토로항아 키위 하우스(Otorohanga Kiwi House)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규모로 살아 있는 키위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오토로아항아 역에서 북쪽으로 7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했는데 그냥 지나쳐 버렸다.

뉴질랜드의 국조인 키위의 고향이라 불리는 오토로항아를 지나쳐 버렸으니…. 여유 있는 일정이지만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려 아쉬움을 남기기로 한다.

와이토모에 도착을 하였다. 여행객들이 떠나고 주위에는 어둠이 내린다. 어둠속 불빛을 찾아 후후(HUHU)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맥주한잔에 분위기가 절로 살아난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으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밤 12시까지 운영한다는 후후레스토랑은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여유롭고 안온한 휴식이 가져다주는 행복이 가게를 장식한 벽난로 속 장작불과 더불어 따뜻하게 타 올랐다.

글·사진 박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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