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마일비치 수려한 경치와
조개잡이에 시간가는줄 몰라

성난 파도소리가 아침을 몰고 온다. 어제 밤 스티비 가족에게 받은 융숭한 대접으로 과식을 한 탓인지 설사로 잠을 설쳤다. 여유있게 아침을 먹고 나서 모처럼 캠퍼밴 정리를 했다.

덤프스테이션(Dump Station, 오물처리 장소)에 오물을 버리고 급수시설에서 식수를 채워 넣었다. 모처럼 가는 빗자루로 내부를 쓸고 나서 우리는 90마일 비치(90Mile Beach)로 나갔다.

90마일 비치는 카이타이(Kaitai)의 서쪽 해변에서 케이프 랭아(Cape Reinga) 앞까지의 해변을 일컫는다. 거의 직선으로 이뤄진 90마일 비치는 테즈만해의 거친 파도를 담아내며 고운모래로 해변을 이루고 있다.

테즈만해는 1642년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탐험한 아벨 태즈만(Abel Tasman)의 이름을 붙인 두 나라 사이의 해역이다. 우리가 있는 와이파파카우리 램프(Waipapakuri Ramp)에서 테파기(Te Paki)까지 물을 머금은 모래는 단단히 굳어 있어 관광객을 싣고 차량이 해변을 질주하며 새로운 풍광을 연출한다. 벌써 버스가 6대나 질주를 준비하며 서있고 관광객들은 해변가 고운 모래의 감촉을 느끼며 색다른 체험에 기대 가득한 얼굴들이다.

아내는 이곳에 오기 전 읽었던 책 내용을 상기하며 “이곳은 경치도 아름답지만 조개잡이로도 유명하다”며 잔뜩 기대를 하고 물이 빠져나가 다져져 잘 파지지도 않는 모래 속을 파고 또 판다. 아무리 파도 조개는커녕 껍데기도 나오지 않자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용이 잘못됐다며 포기하려 할 때쯤, 새퍼드를 끌고 산책 나온 노인에게 내용을 설명하니 “물속에 들어가 춤을 춰보라”고 알려준다. 속는 셈치고 물속으로 들어가 트위스트를 추니 이게 웬일? 모래반 조개반이다. 물살이 들어오면 모래에 틈이 생기고 그때 발을 비벼 공간을 만든 다음 헤치면 어느 곳에나 피피조개가 있다. 1인당 100마리만 허용된 조개잡이는 이곳을 조개반 모래반으로 만든 원동력이다. 발 한번 비비고 나면 10여개 이상씩 잡히는 처음으로 하는 조개잡이에 아내와 아이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마냥 즐거워한다.

해변을 달리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아와누이(Awanui) 카우리 킹덤(Kauri Kingdo m)에 들렸다. 카우리 킹덤은 카우리나무로 만든 목공제품을 가공ㆍ판매하고 갤러리와 식당까지 운영하고 있다. 카우리 나무 벌목이 금지된 뉴질랜드에서 현재 가공하는 카우리 나무는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발굴해서 가공을 한다. 그곳에 처음 발견된 나무는 4만5천년 전의 나무라 적혀 있다. 두 개가 발견됐는데 하나의 무개가 90t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2층을 올라가는 계단을 카우리 나무 기둥 내부를 파서 만들었으니 나무의 크기를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땅속에서 나온 카우리 나무를 스왐프 카우리(Swamp Kauri, 습지 카우리) 나무라 하는데 오래전에 천재지변으로 매몰된 카우리나무이다.

탄소연대 측정치에 의하면 5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일단 공기와 접촉하면 급속히 훼손되는데 이를 가공해 훼손을 막는다. 천연적인 얼룩으로 진한 암갈색과 녹색으로 색조가 바뀌며 질감미가 한층 두드러져 생활용품 및 공예품으로 많이 가공되고 있다.

뉴질랜드를 여행하면 늘 카우리 나무와 맞닥트리는데 매우 견고하며 내구성이 뛰어나 선박부터 건축용 소재·가구·장식품까지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목재이기 때문이다.

카이타이(Kaitai) 시내를 통과한다. 카이타이(Kaitai)는 정갈하면서도 제법 큰 마을로 은행도 2개나 보인다. 초원을 가르던 차가 숨 막히게 오르막을 오르며 라에티 숲(Raetea Forest)을 통과한다. 울창한 숲이 밀림을 이루고 있는 공간을 헐떡거리며 오른 차는 쉼 없는 내리막길에 잠시 휴식을 청한다.

100km를 달려온 우리는 마오리족의 병을 치료한다는 나화온천(Ngawha Spiring)에 도착했다. 시설이 허름해 후회스러웠는데 온천물이 일품이다. 유황 냄새가 피부 깊숙이 침투해 피로를 삼킨다. 머드팩을 하고 나니 피부 나이가 10년은 젊어진 것 같다. 가족이 한탕에서 망중한을 즐기기도 하고 각자 마음에 드는 탕을 골라  가기도 했다. 닥터(Dactor)탕에서 마무리를 하고 나오니 모든 병까지 앗아간 듯하다. 왜 마오리족들이 치료를 위해 이곳을 이용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개운한 마음으로 오포노니로 가는데 길가에 공작 두 마리가 노닐고 있다. 차를 멈춰 세우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잽싸게 도망을 간다. 기다림의 시간! 하지만 떠난 공작은 돌아오질 않는다. 동물원이 아닌 자연의 공간에서 돌고래, 바다표범, 가마우지, 공작 등 다양한 동물들을 접할 수 있는 이곳은 진정 살아있는 자연의 보고였다. 오포노니에 도착을 했다.

오포노니(Opononi)는 호키아나 항구(Hokianga Harbour)에 자리 잡은 휴양지로 고운 모래사장을 지니고 있다. 앞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도 앞산이 막아줘 온화하다. 우리는 이곳에서 홀리데이 파크를 이용하지 않고 바닷가 옆에 캠퍼밴을 세웠다. ‘발길이 멈추는 곳! 그곳이 오늘의 숙소이다’를 실현하고픈 욕심과 매일 들어가는 홀리데이 파크의 비용을 줄여 보자는데 있다. 모처럼 캠퍼밴 안에서 모든 요리를 한다. 밥과 스테이크를 먹고 나서 전복요리다. 어제 마오리족에게 선물을 받은 어른 손바닥만한 전복 4개를 후딱 해치운다.

어둠이 몰려오는 시간 해변을 따라 산책을 하며 이들의 삶의 공간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간결하게 지어진 주택으로 대문이 없으며 베란다가 보이질 않는다. 모두들 마당엔 잔디가 자리를 잡고 있으며 전체가 열린 공간이다. 한산한 거리를 걸으며 그간의 여정을 되돌아본다. 아내와 아이들과 꼭 잡은 손끝에 저 평화로운 해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글·사진 박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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