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럿셀’ 최초의 수도로 선정’
한적한 바닷가마을로 변해
역사의 현장 와이탕기에서
영국과 마오리족 조약체결

럿셀에 도착을 했다. 럿셀(Russell)은 1840년 와이탕기에서 조약을 맺은 후 뉴질랜드 최초의 수도로 선정된 곳이다. 한때는 포경선의 기지로 선박과 선원들의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으나 지금은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다.

당시에는 맛있는 펭귄이란 뜻의 마오리어인 ‘코로라레카’로 불렸으나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 지금은 영어 발음인 럿셀로 지명을 바꿨다. 럿셀에서는 한 팀이 내렸다.

선착장에서 바라본 럿셀은 어선 대신 요트가 자리하고 있으며 운치 있는 풍경으로 우리를 유혹했다. 우리는 이번 일정에 이곳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볼 예정이었지만 긴 크루즈 여행으로 시간이 부족해 그냥 통과해 아쉬움으로 남았다.

파이히아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가마우지 두 마리가 우리를 반긴다. 아니 아쉬움을 달래려 배웅을 하러 나왔다. 홀리데이 파크로 돌아간 우리는 간단히 점심 요기를 하고 짐을 정리하고 나섰다.

벌써 2시, 마음이 바쁘다. 빨리 다음 목적지인 와투히히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아내는 와이탕기를 들려보자며 네비에 입력시킨다. 입력을 엉뚱한 곳으로 했는지 뒷골목으로 들어간다. 헤메다 보니 난파선 박물관(Shipwreck Museum) 앞으로 왔다.

이곳에서 아내와 사소한 말다툼을 했다. 마음이 급한 난 제대로 길을 못 찾은 아내에게 화를 낸다. 아무 잘못 없는 아내는 역으로 화를 내고 그 충돌이 다리만 넘으면 와이탕기라는 사실마저 까맣게 만들어 버리고 역사적 사실을 간직한 와이탕기를 못보게 만들었다. 우리의 냉각기로 차 안 전체에 찬바람이 분다.

와이탕기(Waitangi)는 1840년 2월 6일 영국과 마오리족이 불평등 보호조약을 체결한 장소이다. 마오리족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대가로 뉴질랜드 통치권을 영국 정부에 넘기는 와이탕기 조약(Treaty of Waitangi)을 체결했다. 조약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뉴질랜드 주권을 영국에 양도한다.

2. 마오리족의 토지소유를 계속 인정하나 앞으로의 토지매각권은 영국정부에 있다.

3. 마오리족은 앞으로 영국 국민의 권리를 인정받는다.

내용의 주된 골자는 마오리족은 땅과, 산림, 어업을 보장 받는 대신 영국 왕을 인정하고 식민지로 남는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주한 영국인들은 무단으로 마을과 경작지를 만들어 곳곳에서 충돌했다. 영국인은 1960년 마오리와의 전쟁을 벌여 닥치는대로 살상했다.

조약의 약속은 지켜지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 이에 영국은 마오리족의 반영 정서를 완화시키기 위해 힘썼고, 1970년 인종분쟁이 끝난 후 마오리들은 영국화가 됐다.

케리케리로 향했다. 케리케리(Kerikeri)는 베이 오브 아일랜드 북쪽 끝에 자리 잡은 마을로 1800년대 이주해 온 선교사들에 의해 도시의 기초가 마련된 곳이다. 케리케리는 ‘땅을 파다’라는 뜻으로 선교사들이 농기계로 땅을 파서 곡식을 심는데서 유래 됐다.

이곳은 농업지대로 ‘케리케리오렌지’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케리케리 돌 박물관(Stone Store)에 도착을 하니 비가 내린다. 이곳에 뉴질랜드에서 제일 오랜된 목조 건물과 석조건물이 있다.

돌 박물관으로 쓰이는 석조 건물은 1836년에 존 홉스 선교사에 의해 지어졌다. 바로 옆에 있는 미션하우스(Mission House)는 1922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하지만 내 눈엔 들어오지 않는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만이 나의 유일한 벗이자 친구이다.

이곳에서 98km를 달려가면 와투히히이다. 길게 뻗은 직선길과 곡선길이 조화를 이루며 적당한 속력을 내기에 충분하다. 대초원을 가로 질러 달리다보니 자연스레 페달이 깊숙이 눌린다.

초원에서 무지개가 하늘을 향해 피어오른다. 무지개 빛이 유리틈을 통해 우리를 비추자 우리의 마음에도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이 피어올랐다. 서먹해진 차 안의 공기가 따사로워지며 비로소 여유로운 공간으로 탈바꿈 했다.

망가누이(Manganui)를 통과해 화투히히 톱텐 홀리데이 파크(Whatuwhiwhi Top 10 Holiday Park)에 도착했다. 아이들과 아내가 샤워를 하는 동안 식사준비를 했다. 옆에는 젊은 커플들이 다정스럽게 식사준비를 한다.

연예시절과 신혼때가 주마등처럼 스치며 입가에 미소가 머금는다. 오늘 일에 대해 스스로 깊이 반성하며 “앞으로는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바비큐 요리에 미역국까지 성찬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니 모두들 맛있게 먹는다. 맛있게 먹어주는 아내와 아이들이 고맙다. 

어둠을 가로 질러 바닷가에 산보를 나왔다. 어둠속을 뚫고 다가오는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답답한 가슴도 뻥 뚫리는 느낌이다. 아내와 잡은 손에서 진한 감정이 오간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드넓은 공간을 만끽한다.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위에는 별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별빛은 쏟아지고 파도는 별빛을 삼킨다.  글·사진 박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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